리테일 업계에 불고 있는 흑인 인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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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있는 흑인들이 일제히 소비를 멈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7월 7일 있었던 Blackout Day는 바로 이 질문을 현실화한 운동이다. 흑인 인권운동가 Calvin Martyr가 시작한 이 운동은 지난 몇 달간 SNS를 통해 전파되어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 “7월 7일, 흑인 비즈니스(Black Owned Business) 외에서는 일절 거래를 하지 말자”라는 Blackout Day는 흑인들이 지금까지 느낀 금융, 경제적 차별을 알리고자 시작됐다.

이와 비슷한 흑인 인권운동으로는 <15 Percent Pledge>가 있다. Brother Vellies라는 핸드백 브랜드를 운영하는 흑인 사업가 Aurora James는 지난 몇 달 동안 수많은 사람이 흑인 인권운동에 참여하며 지지하는 것을 목격했다. 수백만 달러가 각종 단체에 후원금으로 흘러들어왔고 소셜미디어에는 수많은 사진과 비디오가 Black Lives Matter를 외치며 올라왔다. James도 본인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비즈니스 영역에서 흑인 인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15 Percent Pledge를 고안해냈다.

그녀는 대형 유통업체들에 진열한 제품 중 15%를 흑인 비즈니스에서 제작한 제품들로 채워 넣을 것을 제안했다. 미국 인구의 대략 15%가 흑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스토어의 진열대도 대변해 제품의 15%를 흑인 비즈니스 제품으로 진열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미국 사회에서 다시 한번 인종 간 갈등이 화제가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유례없는 사태가 진행되는 와중에 이 이슈는 점점 사회의 다양한 방면에서 화두가 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리테일 업계도 예외는 아니며 소비자의 소비력이 마치 투표하는 투표용지와 같이 영향력이 있는 현대사회의 리테일은 어느 때보다도 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내 흑인 인구 통계

미 인구조사국의 2018년 통계에 의하면 흑인 가구소득의 중앙값은 41,692달러였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아시아인 가구소득은 87,194달러, 백인 가구소득의 경우 70,642달러였다. 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에 따르면 흑인들은 미국 노동력의 1/9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제조업 종사자의 경우 1/6으로 더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리서치 전문기관 닐슨은 흑인 남성 다섯명 중 한 명이 군에서 종사하고 있다는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 내 흑인들의 지위에 대한 이슈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 전체 인구의 14%가 흑인이지만 2019년 미국 전체 소비 중 10%(1.39조 달러)만이 흑인 가정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동시에 흑인 인구는 가장 소비력이 빠르게 증가하는 인종 중 하나다. 닐슨 조사결과에 의하면 2000년에서 2017년 사이 흑인 인구의 구매력은 108% 증가했으며 2024년까지 1.8조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특히 에스닉 헤어와 뷰티 제품의 경우 전체 소비의 86%를 흑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 향수의 경우 22%, 그리고 남성 개인용품(Toiletries)도 소비의 20%가 흑인들이 하고 있다.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는 미국 흑인 인구지만 아직 사회 전반에 걸쳐 이들의 소득수준을 전체 인구 수준으로 평준화하기에는 아직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오랫동안 제도화된, 그리고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편견들이 흑인들로 하여금 지속해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메시지를 외치게끔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것이 앞서 소개한 <Blackout Day>와 <15 Percent Pledge>다.

Blackout Day, 소비가 곧 목소리다

소비자들에게 있어서 목소리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투표, 건의사항 등 다양한 절차가 존재하겠지만 가장 직관적인 것은 바로 소비다. 사람들은 간혹 “내가 피땀을 흘려 번 돈을 여기에 쓰겠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자원은 제한되어 있지만 투자할 곳이 많은 현대사회에 있어 소비한다는 것이 일종의 투표라고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예외도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많이 팔리는 제품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제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Blackout Day는 이런 중요한 소비자의 목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보다 더 크게 세상을 향해 외치고자 하는 사회운동이다. 다시 말해 소비를 거부함으로써 현재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Blackout Day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은 흑인 비즈니스의 제품 또는 서비스 외 다른 제품들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이로써 사회, 특히 기업과 비즈니스 분야에 있는 인종차별이나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것이다.

Calvin Martyr가 유튜브 비디오를 통해 7월 7일을 Blackout Day로 선언한 뒤로 일부 기업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뷰티 리테일 체인 세포라. 세포라는 그날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임시로 스토어 문을 닫고 그 기간에 스토어 직원들에게 인권의식, 반인종차별 관련 교육을 했다고 전했다. 이외 세포라 본사 직원들 또한 리더십 교육을 이수하며 반차별, 포괄성 관련 세미나를 진행했다.

왜 흑인들이 더 큰 피해를 보는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면 뻔한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흑인 밀집 거주 지역이나 흑인 가정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발생한 것. 그만큼 흑인 인구에 대한 경제적 안전망이나 비상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을 대변한다고 흑인 인권운동가들은 말하고 있다.

이런 부당한 사회현상에 관심을 끌기 위해 사업가 Aurora James는 15 Percent Pledge 운동을 시작했다. Blackout Day가 미국 전역에 있는 흑인 소비자들을 겨냥해 소비력을 통한 메시지를 전달하자고 호소한다면 15 Percent Pledge는 미국 기업들을 향해 흑인 비즈니스에서 생산한 제품의 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타겟, 세포라, Whole Foods, Shopbop 등 브랜드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이런 리테일 스토어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종용하고 있으며 이에 리테일 업계는 발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세포라, RenttheRunway, WeWoreThat 등과 같은 패션과 뷰티 업체들이 15% Pledge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기부를 천명했다.

세포라는 CEO Jean-André Rougeot의 Open Letter를 통해 세포라가 내부적으로 인권에 대한 교육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편견을 줄이고 긍정적인 행동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세포라는 National Black Justice Coalition에 1백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흑인 인권운동에 관심을 보였다. 타겟 역시 National Urban League, African American Leadership Forum 등 흑인 인권단체에 천만 달러 규모의 기부금을 전달하겠다고 전했으며 흑인 사업가들이 최근 다양한 사건들로 인한 피해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Aurora James는 “이런 기부금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15% Pledge를 시행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라고 하며 앞으로 지속해서 흑인 인권운동에 전념할 것을 시사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과 전국에서 벌어진 시위, 그리고 수많은 브랜드의 빠른 대응. 이 자체만으로도 최근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여파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인권운동가는 여전히 흑인들이 당하는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흑인 인권에 대한 인식 높이고, 흑인 오너 제품 비중 늘려야!

흑인 소비자들이 뷰티 제품 구매 채널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곳 중 하나가 뷰티서플라이 스토어다. 전국적으로 1만 개에 가까운 뷰티서플라이 스토어들이 흑인 밀집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흑인을 대상으로 이렇게 특화된 유통채널은 존재하지 않는다.

흑인 소비자들은 뷰티서플라이 스토어들이 흑인 지역에 돈을 버는 만큼 흑인 커뮤니티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수익 일부를 지역 발전에 쓰길 원한다. 또한, 흑인 직원의 채용을 늘리고 흑인 문화와 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여주길 주문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수십 년 계속되고 있다.

한인 뷰티서플라이 업계에도 흑인 직원 채용을 늘리고 있으며, 조지 플로이드 사망과 관련해 흑인 인권에 대한 인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부 시위대에 의해 한인 스토어들이 큰 피해를 봤지만, 일부 지역 협회에서 조지 플로이드 시위와 관련 지지 의사를 표하거나 평화적인 시위에 동참하면서 흑인 커뮤니티의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흑인 소비자들이 뷰티서플라이 스토어에서 판매되는 제품 중에 흑인 오너 제품이 많지 않다는 지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반면 뷰티서플라이 스토어 입장에서도 흑인 오너 제품을 취급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유통 구조상 개별 스토어가 직접 흑인 오너 제품을 구매하기 어렵다. 뷰티서플라이 스토어들은 중간 도매상을 통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통상적인 유통과정이다. 도매업체에서 특별히 <흑인 오너 제품 코너>를 만들지 않으면 관련 제품을 쉽게 취급하기 어렵다.

그리고 흑인 오너 업체들이 뷰티서플라이 스토어를 테스트 마켓 정도로 인식하는 것에도 불만이 많다. 제품이 성공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고 어느 정도 성장을 하게 되면 뷰티서플라이 시장에서 물건을 빼 월마트나 타켓 등 대형 유통업체에만 공급하고 뷰티서플라이 시장에 관심을 끊어 버린다는 것.

실제로 많은 케미컬 업체들이 다양한 매체에 광고하면서 구매처에 월마트, 타켓, 세포라 등을 언급하지만 지역 뷰티서플라이 스토어에 대한 언급을 안 하거나 낮은 편이다.

또한, 공급 가격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뷰티서플라이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품질은 물론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흑인 소비자들도 흑인 오너 제품을 구매하려는 노력을 보이지만 가격에 더 크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흑인 경영인들의 뷰티서플라이 스토어에 대한 인식을 바뀌어야 하며, 제품의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반면 뷰티서플리이 스토어들은 흑인 오너 제품에 관심을 높이고 여건이 되는 한 최대한 많은 아이템을 취급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흑인 소비자들의 소비에 흥망성쇠가 직결된 뷰티 업계는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이해해야만 뒤처지지 않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흑인 소비자들과 더 깊은 수준의 교류와 소통을 할 수 있다.

Black Owned Business란
말 그대로 흑인이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비즈니스를 일컫는다. 대표적인 기업들은 Advent Capital, Brown Capital Management 등이 있으며 뷰티 브랜드는 Vernon François, Briogeo, Dr. Locs, Mielle Organics, Kim Kimble Haircare, Bomba Curls, Ooli, Bontánika Beauty, CURLS, Eden Bodyworks, Hanahana Beauty, nyakio Beauty, Beneath Your Mask, Urban Hydration, KNC Beauty, Oui The People, Kreyòl Essence, Beauty Bakeri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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