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에게도 제법 장사꾼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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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뷰티션 직원이 나이를 물어 보지 않고 어린 손님의 귀를 뚫어 주었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귀를 뚫어 주었다는데 1주일 뒤에 그 손님과 함께 두 여자가 왔다. 자기들은 이 아이를 낳아준 어머니와 키워 준 어머니들이라고 했다. 두 여자는 아직 18세가 되지 않았는데 보호자 없이 귀를 뚫어 주었으니 고소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법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귀걸이를 달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아물 것이라고 달랬지만 막무가내로 떠들어 댔다. 얼마 후 정식 소송은 하지 않았지만 변호사를 앞세워 우리 보험 회사에다 claim을 걸어왔다. 뷰티업계의 정보지를 만든다는 내가 무지함을 드러낸 첫 사건이었다.
뷰티서플라이 사업장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많은 법 규정들이 많다. 우리는 그런 룰들을 모르는 채 장사를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보면, 가발을 씌어주면서 고객의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손상을 입혀도 법에 위배된다. 귀걸이는 물론, 코걸이, 입술걸이, 혀걸이, 배꼽걸이 등등 신체에 구멍을 낸다면 어떤 경우든 면허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스토어 바닥 청소를 했는데 미처 마르기전에 손님이 미끄러져서 다쳤다면 스토어 책임이다. 그런데 주의 싸인(caution sign : 노란색 주의 표시 판)을 세워두고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반반 책임이라는 것도 알았다. 스토어내의 진열장 모서리나 디스플레이 걸이에 걸려 상처가 생겨도 스토어 책임이고, 스토어 건물 소속 주차장에서 넘어져 다쳐도 해당 스토어 책임이다.
법망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수시로 주의를 해야 한다. 임신초기인 직원이 있었다. 평소에 늘 주의를 시켰는데 한계단짜리 툴에 올라가서 물건을 내리다 순간 어지러워 바닥으로 넘어졌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운동화를 신었기 때문에 별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본인이 구급차를 불러서 실려 갔다.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해 봐도 아무런 문제를 찾지 못했는데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고, 변호사의 통보만 날아 왔다. 병원비는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원하는 만큼을 지불해야만 했다. 또 다른 흑인 직원은 출산 휴가를 받고 출산을 했는데 5일 만에 일을 하겠다고 해서 ‘노’했더니 일을 해도 된다는 담당의사의 소견서를 받아왔다. 그 소견서를 써 준 의사도 그렇지만 산모가 우리를 경악케 했다.
어느 날 백인 손님이 와서 백인 제품을 하나 사면서 한마디 했다. 이런 제품은 미용실이 아닌 일반 스토어에서 팔지 못한다는 것 알고 있냐고 물었다. 몰랐다고 대답했다. 1주일 뒤에 변호사로부터 경고장이 날아 왔다. 예의 그 제품을 계속 팔면 고소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부 백인제품 판매는 룰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렇다고 백인 제품을 전혀 팔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백인 제품은 ‘professional use only’ 제품이기 때문에 미장원을 운영하면 된다. 미장원 없이 백인 제품을 팔게 되는 경우 백인 제품 도매상의 단속을 요령껏 피해 갈 수도 있다. 제품을 우리에게 판매한 공급처에다 그 책임을 미뤄버릴 수 있으므로 법적 문제를 대비해 항상 공급처의 연락처를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한다.
뷰티소매상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협회 회원 중에 칼라 렌즈를 팔다가 단속반에 걸렸다고 주의하란다. 그 회원은 칼라렌즈 3-4피스를 팔고 $3,200 벌금을 물었다는 것이다. 칼라 렌즈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조금의 이득을 보려다 낭패를 당하는 수가 많기 때문에 그런 제품은 취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브랜드 카피 가방 제품과 카피 일반 잡화를 팔던 친구가 경찰에서 조사를 받는다고 연락이 왔다. 손님으로 가장한 단속반 여자가 먼저 물건 몇 개를 사면서 다량의 주문을 하더란다. 친구는 웬 떡이냐며 어떻게 로고를 붙이는지 방법도 다 가르쳐주면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닦았다 한다. 3주 뒤에 물건이 와서 예의 그 여자한테 연락을 했더니 그 여자는 보이지 않고 경찰관과 형사, 국가 안전부 사람들이 와서 물건을 전부 압류하여 가져가고 본인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반 잡화 도매상을 통해서 들여오는 상품 중에는 가끔 브랜드 카피 제품이 섞여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상품과 진열하게 되는데 가끔 그런 것을 조사하러 다니는 조사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의 아니게 일을 당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부당하게 이득을 쫓다가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스토어를 인수 받았을 때부터 궁금했던 상품이 있었다. 계산대 옆 작은 박스에 예쁜 유리대롱 속에 조화로 만든 장미꽃 한 송이가 들어 있는데 우리 스토어에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출내기였으므로 아무도 이 꽃대롱의 용도를 몰랐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아마도 프로포즈를 할 때 이 꽃대롱으로 하는 모양이라며 팔았다. 생각이외로 잘 팔렸다. 심지어 경찰관도 사갔다. 우리는 의심을 해 본 적 없이 이 꽃을 사가면 ‘오늘 좋은 일 있나보다’며 놀리기도 했다. 어느 날 주변에 있는 주유소에 갔더니 그 곳에도 그런 꽃대롱이 있어서 프로포즈할 때 쓰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마약 사용자들이 쓰는 대롱이란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후 꽃대롱을 모두 박살 내버리고 손해를 좀 보았다.
스토어 내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사소한 일은 참 많다. 그래도 스토어에 가 보면 인간 냄새가 난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남자 손님이 있다. 우리의 손이 미처 닿지 않은 곳을 청소도 해 주고 심부름도 해줘서 용돈도 받아 가는데 어느 날 얼굴과 온몸에 생채기를 달고 왔다. 왜 이렇게 생채기를 가졌냐고 물었더니 가족에게 당했다고 했다. 어눌한 장애자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쓰는데 돈이 나오는 날 밤이면 온 가족(할머니, 어머니, 누나, 남동생)이 돈을 뺏어가려고 사투를 벌인다고 했다. 본인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 몸으로 싸우다가 긁히고 할겨서 온 몸에 상처를 가지고 얼마간을 지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같은 시기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매니저가 그를 도와주기로 했다. 돈을 스토어에 맡겨두고 그가 필요 할 적마다 조금씩 찾아 가도록 했다. 며칠 뒤 그의 어머니가 와서 노발대발 난리를 피우고 갔다. 애석하게도 더 이상 도와 줄 수가 없게 되었다.
스토어에 주인이 바뀌었거나 새로운 직원이 왔을 때 흔히 당하는 스토어 내의 사기극이 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내다바이’이다. 손님이 계산을 한다. 계산대가 열리는 순간 돈을 내려던 손님이 ‘저것’하며 주변에 있는 다른 상품을 보여 달라고 손짓한다. 직원은 계산대를 열어 둔 상태로 돌아서서 그 상품을 집게 된다. 순간 계산대에는 검은 손이 들어와 돈을 몽땅 집어가는 일이다. 어떤 놈은 그걸 집어다 스토어 내에서 돈 자랑까지 하면서 직원들에게 팁도 주는 데 새 직원은 영문도 모르고 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이런 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긴장을 하면서 장사꾼의 기질을 배워 갔다. 스토어를 시작 한 후 두어 해가 지났다. 우리에게도 제법 장사꾼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장사의 요령도 생겼고, 손님을 다루는 방법도 터득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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