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스토어에 좀도둑이 끊이질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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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어는 노력한 만큼 매상이 오르고 있었다. 나는 오후 4시까지 회사 일을 마치면 8시까지 스토어 일을 도왔다. 처음에는 좀 힘들었지만 습관이 되니 점점 익숙해져 견딜 만했다. 하지만 식사준비 그리고 늦은 저녁을 먹고 또 피곤 때문에 예전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어 체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매일 그렇게 주 6일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하다보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체중 과다로 여기저기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하였다. 건강을 잃고 돈이 있으면 무엇하랴마는 그래도 매상이 오르고 은행에 진 빚을 갚아 가는 즐거움이 힘든 일과를 잊게 해 주었다.

스토어에서 좀도둑과의 실랑이는 여전한 사투였다. 한국 중령 출신의 매니저가 가게 건너 파킹장에서 흑인 여자와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흑인들이 달리기를 잘하기도 하지만 군인 출신이라서인지 날렵한 우리 매니저도 그에 못지않게 잘 뛰었다. 세어보니 여덟 바퀴를 뛰고 맞은편 길에 마주 섰다. 여자는 계속 F… you!를 외치고, 우리 매니저도 질세라 give me that! give me!라며 뱉어 내더니 여자가 결국 손에 쥐었던 상품을 길에다 냅다 던지고 더 큰 소리로 F… you를 외치고 가 버렸다. 나는 배를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꽤나 큰 파킹장인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여자가 던져버린 머리 한 팩을 주워 들고 혼자말로 중얼중얼 대며 걸어오는 매니저에게 이제부터는 도둑을 따라 붙지 말라고 당부를 했더니 그는 오히려 그렇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화를 냈다.

좀도둑 문제는 업계의 풀리지 않는 영원한 과제이다. 보안시스템이 없다면 정말 큰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스토어
인수 후 초기에 가게가 텅 비었을 때 도매상 물건을 얼마나 사다 날랐던지 도매상 주인이 도대체 그 물건을 벌써 다 팔았느냐며 의아해 하던 때가 생각난다. 물건에 욕심이 많아 눈에 뜨이는 것은 다 사다 날랐는데 반은 도둑맞고 반은 장사를 했던 것이다. 그래도 보안시스템을 설치한 후에는 도매상 가는 횟수가 줄었다. 나는 새로 스토어를 오픈하는 분을 만나면 무조건 카메라 시스템과 시큐리티 시스템을 권한다. 그런 시스템을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고객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날이었다. 매니저가 어떤 여자의 뒤를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앞길 신호등에 걸려 있던 하얀 차가 갑자기 골목길로 꺾더니 이 두 사람 뒤를 또 따라 가고 있었다. 나도 재빠르게 차를 몰고 그들의 뒤를 쫓았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길가에 좀 전의 하얀 차가 서 있고, 시멘트 길 위에 그 여자가 납작 엎드려 수갑을 차고 있었다. 나는 “당신은 누구이기에 수갑을 채우냐”고 했더니 “형사인데 퇴근길에 심상치 않은 상황 같아 따라 와 봤더니 당신네 가게 좀 도둑이더라”고 응답했다. 고맙긴 하지만 수갑까지 채울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1주일 뒤에 공문이 배달되면 응답만 하면 된다며 그 여자를 차에 싣고 가버렸다.

스토어에 돌아와 보니 헤어칼라 상품 40여개를 그 여자가 큰 가방에다 싹 쓸어 담아간 것을 발견했다. 어이가 없었다. 정확히 1주일 뒤에 법원에서 출두 명령장이 날아 왔다. 공판하는 날이란다. 바빠서 낮에는 출두할 수가 없다고 하니 저녁법정도 있다는 것이었다. 약속한 날 저녁 퇴근 후 매니저를 데리고 법정에 나갔다. 판사 한 사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런 저런 사적인 이야기까지 해 가면서 반겨주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그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 이야기를 다 털어 놓았다. 세금도 잘 내고 지역에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있는데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 동안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털어 놓았다. 판사가 다 듣고 난 뒤 그는 그런 좀도둑까지 유치하기에는 유치장이 좁다며 훈방 조치할 것이고, 다시는 그 여자가 당신 스토어에 근접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관할 구역 경찰서에 가서 잃어버린 상품을 찾아 가라고 해서 갔더니 선물꾸러미 같이 멋지게 포장을 해서 내 주었다. 다음 날 사무실로 백인 노인 한분이 찾아 왔다. 어제 저녁 법정에서 만난 판사의 아버지라 했다. 우리가 뭘 하는지 보고 매거진과 신문을 얻어 오라고 해서 방문했다는 것이다.

좀도둑 사건은 끊임이 없다. 경찰을 불러도 사건이 종료되고 나서야 ‘앵앵’대며 나타나는 때도 있다. 화가 나서 따지면 인원 부족으로 자기들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하겠지. 얼마나 힘들까. 우리 같은 스토어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건도 아닐테지. 그 보다 더 위험하고 큰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을 테니까. 관할 경찰서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한 가지 얘기를 덧붙여본다. 어느 모임에 참석했다. 서빙하는 흑인 여자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체를 했다. 우리 스토어 이름을 대며 고객이라는 것이었다. 자기 딸이 4살인데 8가지의 어려운 수술을 받고 멤피스 센쥬드 아동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아이의 사진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사진과 함께 계산대 옆에다 아이 수술 지원 모금 통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빨리 모금 통은 채워져 갔다. 손님도 넣고 우리도 넣고 해서 가득 찼다. 은행에 가서 은행 직원이 보는 앞에서 모금통을 오픈했더니 꽤나 되었고, 그대로 아이의 이름으로 된 센쥬드 병원 계좌로 송금을 했다. 또 하나 만들어 거의 차 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모금통 쪽에서 ‘툭’하는 소리가 나더니 모금통을 뜯어서 들고튀는 놈이 보였다. 따라 붙었지만 놓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지. 얼마나 절박했으면 모금통까지 훔치려고 했을까’ 스스로 위로를 하며 또 만들었다.

몇 번째로 모금액을 송금한 어느날 ‘aunt sue’하며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어린아이가 스토어 문을 뒤뚱뒤뚱 들어서며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 뒤에는 아이의 엄마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따라 들어 왔다. 모금지원을 했던 그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를 덥썩 안아 올리며 “하느님 감사합니다”하며 소리를 질렀다.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직도 2번의 수술이 잡혀있는데 아이가 워낙 오고 싶어 해서 데려 왔단다. 우리는 작은 일에서 오히려 더 많은 감동을 먹고 산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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