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기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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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인사를 쉽게 나누지 못한다. 소심하거나 부끄럼을 타는 나 같은 사람은 더 그렇다. 얼마 전만 해도 교회에 나가면 나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인사하기에 바쁜 청년이었다. 이제는 내가 인사를 받는 나이가 되었다. 주일 미사에 자주 빠지는 편이고, 낯선 청장년들이 많아 그런지 요즈음은 예전만큼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 교회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 그럴 거다.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만 인사한다. 특히 요즈음 청소년들은 인사할 줄 모른다. 장년층도 비슷한 것 같다. 나이 탓인지, 그들이 보는 둥 마는 지나치는 경우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나는 신앙인들에게 인사는 적어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도하는 사람들이니까. 기도란 무엇인가? 어느 수도원에서 세상에 버려진 고아소년이 심부름을 해주며 수도원 창고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매일 모여서 함께 중얼거리는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모여서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소년이 원장에게 물었다. “기도하는 거란다.” 원장이 답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소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거란다.”(원장) 어느 날 원장이 소년을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런데 창고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원장은 창고로 달려가,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 소년이 창고 안에 버려진 성모상 앞에서 노래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춤이 얼마나 진지했던지 원장은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얘야 뭐하고 있느냐?”(원장), “성모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요.”(소년) 원장은 부끄러웠다. 그 고아소년의 정성어린 몸짓이야말로 참된 기도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孝道)라면, 신앙인들에게는 그 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기도라 할 수 있다. 이제민 신부의 기도문은 언제 읽어도 멋있다. “처음 내가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 때 나는 기쁨이 무엇인지 몰랐다. 즐거움이 무엇이고 고마움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기쁨이었다. 그때처럼 그렇게 제가 남에게 기쁨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남이 저에게 사랑을 느끼고 화해를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중략) 그때 그 어린아이가 되게 해주십시오.”

기도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남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 나로 인해 남들이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 것, 그게 참다운 기도라는 거다. 내가 남에게 진심으로 베푸는 친절, 선의, 나눔, 희생, 봉사…이런 게 그분을 기쁘게 하는 기도라는 거다. 인사는 이런 기도를 시작하는 선한 마음과 존경의 표시다. 소통의 출발이니까. 옛날 부모님들은 동네 어른을 보면 반드시 인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미국인은 유치원 아이들에게 “하이” 인사하는 것부터 가르친다. 인간에 대한 예의의 기본이니까. 시대가 변했다. 인사를 꼭 나이 어린 아랫사람이 먼저해야한다는 법은 없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일수록, 청소년들은 더 따라서 할 거다. 이런 예절운동을 교회 안에서부터 벌였으면 좋겠다. 신앙인들끼리 인사하며 기쁘게 지내는 모습이 교회 밖으로 흘러가도록 하자는 거다. 서로 인사도 안 하고 냉랭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고지순 하신 하느님의 사랑”, “좋은 분”…아무리 외쳐 본들 그분이 기뻐하실 리 없다. 형제간끼리 불목하면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불경스런 말일지 모르나, 성직자로 불리는 분들이 생각해 보아야할 게 있다. ‘목회’ 혹은 ‘사목’이란 말은 성직자가 일반 신도들을 양치기 하는 게 아니다. 성직자와 신도들이 동등한 자리에서 지혜를 모아 따뜻한 교회공동체를 만들어, 세상을 향해 봉사함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거다. 그게 그분을 진정으로 기쁘게 해드리는 목회활동이고 사목활동이다.

덧붙인다. 교회 안에서 그분을 말로 찬양하는 것은 아주 기초적이고 당연한 신앙행위일 뿐이다. 그보다 더 나가야 한다. 그런 기초적 신앙행위가 행동으로 표현되고 실천되어,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육화되어질 때 비로소 그분께서 기뻐하실 거라고 나는 믿는다.

하늘에 붕 떠 있는 교회가 아니라, 땅을 딛고 서 있는 사랑이 넘치는 인간 공동체를 만들어 갈 때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분을 따르게 될 것이다. 친절한 인사는 이를 위한 시작 기도라고 말하는 이유다. “좋은 하루 되세요.” 얼마나 멋진 기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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