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 칠순 잔치 가진 초등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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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훈김으로 산다. 제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사람에게도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건 훈김이다. 따뜻하고 훈훈한 마음,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또한 행복이다. 이런 행복은 어느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자기 하기에 달려 있다.

지난달 초등학교 친구들 30여 명이 한자리에 앉아 칠순 합동 파티를 가졌다. 반년 전부터 몇몇 친구들과 함께 계획하고 추진했던 일이다. 계속되던 추위, 그날따라 화사해진 초봄의 햇살이 우릴 축하해주었다. 언제나 변함없이 흐르는 한강, 세빛섬에 자리 잡은 컨벤션센터 3층 연회장, 아주 한적한 월요일이었다. 우리가 전세를 낸 셈이었다. 만면에 웃음과 함께 세련된 매너가 몸에 밴 젊은 매니저와 직원들의 몸동작부터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식전, 바깥 난간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우리는 축배를 들었다. 70년 장애물을 뛰어넘어 용케도 살아남은 촌놈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준비한 초등시절 음악이 우리를 6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우리는 음악을 따라 합창하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다.

뒤돌아보면, 격동의 세월을 살았다. 모두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농촌의 자식들이었다. 굶주림 속에서 공부했다.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다. 월남으로, 중동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달러벌이가 애국이었던 시절을 치열하게 살았다. 이제 5천 년 역사에서 유래 없는 평화와 풍요를 누리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 세대가 살아온 보람이다. 물론 앞서 떠나신 부모님들의 처절한 희생의 덕이다.

남녀친구들이 얼굴을 마주 보며 파티 식탁에 앉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지만 마음은 초등학생들처럼 들떠 있었다. 평생 목사로 살아온 진솔한 친구가 “이렇게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라는 멋진 식사 기도를 해주었다. 정말 감사할 일이었다. 아름다움이란 이런 걸 말한다. “냇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60여 년 전 우린 눈물로 졸업가를 불렀었다. 그때 헤어진 후 머리칼이 하얀 노인이 되어 처음으로 만난 친구들도 있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던가. 그리움이 만남을 이루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참가해준 친구들에게 서로가 감사했다. 어느 여자 친구는 미술도구도 준비할 수 없었던 가난했던 초등시절을 회상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자진해서 빌려준 크레용과 미술지에 그림을 그려 “수(秀)”를 받았단다. 평생을 가슴에 담아 두었던 얘기를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친구들의 얘기 속에 티 없이 맑았던 소년/소녀 시절 추억 60여 년이 고스란히 농익어 있었다. 장맛처럼 깊은 우정이 다져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보석들이었다. 마지막 순서로 초등학교 교가와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우정의 샘을 더 넓게 깊게 파서 나누어 마시자, 그렇게 노년을 훈훈하게 살다 가자고 다짐하면서… 또한 몸이 불편하거나 이런저런 사유로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사람살이 행복, 자기 할 탓이다. 옛 친구들일수록 끝까지 지켜가자. 오래된 장맛처럼 언제 만나도 맛있다. 내가 그런 친구들을 먼저 부르자. 친구들이 불러주면 언제든 즉시 달려가자. 남은 인생, 화롯불처럼 따뜻한 좋은 친구가 되어주자. 어렵고 힘든 친구들에게는 내가 먼저 다가가자. 마음을 왜 아끼나. 마음껏 퍼주고 가자. 그게 내가 말년을 행복하게 사는 길이요 비결이다.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인생은 회전목마, 어린아이로 태어나 다시 마지막을 어린애로 살다가 떠난다. 이번 초등친구들의 칠순 잔치가 바로 인생의 반환점이었다. 서로가 보석들임을 확인한 자리였다. 행복했다. 보석들을 즐기자. 내가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제 얼마의 시간에 주어질지 모른다. 이제는 헤어질 때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며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하곤 한다. 노년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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