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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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날마다 기적을 체험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면 기적이요, 매 시간 살아 숨 쉬면 기적이다. 아이들과 내가 K의 허리 춤 붙잡고 말렸던 뷰티타임즈가 어느덧 25주년을 맞았다.

아침마다 바쁜 숨 몰아쉬며 ‘김이야 송이야 이런 기사는 어때, 저것은 좋지?’ 없는 머리 짜 내어 땀으로 버무려 출판이 되어 나올 때마다 힘들고 숨이 차지만 그래도 매 달 완성품이 된 한권의 책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첫 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슴이 떨리고 벅차다. 쓴 말은 한마디 뱉어 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지지만, 글은 그렇지 못하여 너무나 조심스럽다. 그래서 한 줄의 글이 출고 될 때 마다 온 직원이 모여 심의를 거친다.

이렇게 25년 세월을 우리 몸속에 있는 ‘진’을 다 쥐어 짜 내고 남은 것은 이제 빈껍데기뿐인데 아직도 살아 있으니 기적이라 하지 않겠는가? 나름, 여기까지 오르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월간지 만들어 남들처럼 부를 쌓아 올린 것도 아니고 험한 고비를 맞을 때마다 가파른 산을 오를 때 한 발 앞의 할 딱 고개를 오르듯 멀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글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출고 이후에 후회한다. 우리가 보기엔 봐 줄만하다고 자신하지만, 또 남들이 평가 했을 때 마음에 안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하던 우리는 최선을 다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이 든다. 아옹다옹 의견 충돌도 많았고 한 줄의 글이라도 독자들의 사업에 대박을 터트리는데 필요한 묘약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매 달 혼신의 힘을 모아 올 곧은 정신으로 만들어 낸 책이다. “누구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정직하게 있는 사실만 유포하자“는 신념을 가지고 시작하였지만 본의 아니게 때로는 샛길로, 때로는 울분으로 그르치지는 않았는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인간이기를 지키려 노력은 했다고 본다. 한 줄의 살아 있는 글을 찾아서 우리는 늘 길을 떠나야 했다. 덕분에 미 전국으로 운전 해 다니느라 미국의 웬만한 지형은 머릿속에 잠 재워 져 있다.

중장년 시절에 잘하고 있던 사업까지 접고 만들어야만 했던 뷰티 매거진, 대책도 없이 이것저것 다 버려 가면서 온 몸을 사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미국에서 공부한 작은 시동생을 귀국 못하게 잡으면서 함께 해 보자고 달래며 한 달여 함께 출장을 다녀왔었는데 출근을 하지 않아서 집에 가보니 그의 말이 걸작이었다. “여차하면 길바닥 신세를 져야 할 판인데 형은 왜 그 일에 매달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는 한국으로 떠나 버렸다. 나도 아직 K의 속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힘든 일을 왜 이렇게 매달리느냐고 바가지를 긁을 적마다 ‘고비가 곧 힘’이라면서 달래던 아슬아슬한 순간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서 ‘감히’ 기적이라고 위로 하고 싶다. 이는 나 스스로가 그 동안 입은 피해망상에 대한 위로를 받으려고 기적이라고는 말하지만 이 모두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허공에서 꿈틀거리는 ‘꿈’을 좇아 온 미련한 인간의 덫이 아닌가 싶다.

언제 나온 노래인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들은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난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 왔네/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 가네…. 사람들은 하던 일이 잘 안되면 접어 버리고 가는 곳이 고향이다. 그렇다고 고향을 찾아 가면 뾰족한 수가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 곳에 가면 포근한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 유난히도 생각나는 어머니 품 속 같은 고향, 사람들은 그 곳에서 잠깐이라도 심신을 쉬고 싶으리라. 우리가 지향 했던 아메리칸 드림이 이것이었을까? 툴툴 털고 태평양 건너 고향에라도 가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났지만 K의 속을 꺾을 수가 없었으니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K가 꾸어 온 아메리칸 드림도 그저 소박한 소시민의 희망 처에 불과 했을 것이다. 그저 인간답게, 기본과 도리만 지켜도 올바른 길잡이가 되리란 기치 하나로 뷰티타임즈를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으니 그의 꿈도 그저 소박한 소시민들이 꾸는 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요즘은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아직도 버티고 있는 뷰티타임즈가 기적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 인근 도시에 출장을 다녀 온 직원이 화가 잔뜩 나서 돌아 왔다. ‘정말 속상했어요. 어떻게 우리 뷰티타임즈를 라면 냄비 받침으로 쓸 수 있을까요?” 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내어 놓았다. 우리 기자들이 취재차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을 많이 담고 온다. 독자들이 다 내 마음 같으랴? 잘잘못을 따지며 듣기 싫은 쓴 소리를 쏟아 부어도 못 들은 척, 울분을 견디고 참아 가면서 본인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책을 라면 냄비 받침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올 때엔 여지없이 볼멘 목소리를 낸다.

‘그래그래, 자네가 이렇게 속이 상한 것을 보니 그 사람들 기본이 부족한 걸세.’라며 달래주지만 나는 몇 갑절 더 속이 상한다. 아무리 한번 보고 마는 잡지라 해도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들만의 착각 일 테지만 그건 좀 심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뷰티 필드를 일으켜 보려고 밤낮으로 애쓰고 뛰어 다니며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라면 냄비 받침이 되어 납작 찌그러져 있을 책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어찌 다 표현하랴.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스스로 자초한 일이 아닌가?

그런 저런 세월 속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고집만 부리던 K도 예외 없이 칠순을 맞았다. 평생 가족과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애 쓴 수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짧은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3천여명이나 실은 크루즈 배 안에서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 준 사람들이 있었다. 매거진에서 얼굴을 익혔다는 뷰티인들이었다. 아~ 세상에! 그 누구를 만난 것 보다 반가웠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오랜 친구나 형제처럼 매일매일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세상에는 동인이 많다. 한동네에서 오랫동안 안면을 익혀 온 지인, 같은 창문을 함께하고 동문수학한 동창인, 태어난 곳이 같은 지역 고향인, 인종 분류에서 같은 고국이라 부르는 한민족,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미주 뷰티인이다. 그래서 더욱 반갑고 정이 느껴진다.

지난 1월 라스베가스 뷰티 쇼를 다녀온 K가 자랑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했다. 뷰티타임즈 시작 호부터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 해주는 어느 회사 최고 간부께서 창간호에 실린 K의 첫 칼럼을 루미네이트하고 몽블랑 펜에다 ‘K 이름과 25주년’을 새겨 넣고 ‘참으로 수고 하셨어요’라며 건네주더라는 거였다. 유독 그 분 한사람만의 마음이겠는가? 뷰티타임즈를 아껴 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라 생각이 된다. 누구는 라면 냄비 받침으로 사용 되는 뷰티타임즈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귀 기우려 주는 애독자가 있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이렇게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읽어 주는 애독자 여러분들과 글로벌 경제 침체로 힘들어 하면서도 물심양면으로 광고지원을 해 준 많은 회사들과 주옥같은 글을 보내 준 여러분들과 그다지 만족하지도 못하면서 가난한 살림을 꾸러 나가는데 힘이 되어 준 뷰티타임즈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덕분에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25주년이 되면 모든 분들을 초대하여 화려한 인사를 드려야지 했던 계획은 어긋났지만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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