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살아있는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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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친구 K부터 찾는다. K는 늘 그랬다. 내 전화를 받자마자 “한 잔 하자”며, 만사를 제쳐놓고 나부터 불러낸다. 나를 그렇게 챙겨주는 그가 정말 좋았다. 오죽했으면 그의 아파트와 한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내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안간 힘을 썼을까. 그런데 요즈음은 예전 같지 않다. 바쁜 일이 있다며 만남을 미룬다. 나로서는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K의 친구 리스트 순위에서 이제 내가 상위자리에서 밀려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왜 그런가, 한 가지 꺼림직 하고도 분명해 보이는 이유가 있기는 있다. 한번은 술을 마시면서 K와 정치적 견해로 다툼이 있었다. 아무리 친해도 그런 일로 의견이 다르면 토라지고, 서로가 도끼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만남조차 줄어들고 만다. 한국인들의 특징이다. 요즘 분위기가 특히 그렇다. 사상문제로 형제간끼리도 살인을 해댔던 그런 끔찍한 6.25가 회상된다. 겉으로는 선진국이지만, 민주시민으로서 사고(思考)는 아직도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K를 버릴 수는 없다. 평생을 함께 한 보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 같은 노인은 새로운 친구를 사귈 시간이 많지 않다. 노년이 슬픈 이유다. “그렇지, 이해해야지, 친구니까.” “아마 몸이 불편할 거야” “노년을 즐기느라고 일정이 아주 빡빡할 거야.” 나는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 가자. 내 하기에 달려있을 거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편해진다.

친구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 노년행복의 필수조건은 뭐니 뭐니 해도 친구와 건강이라고 하지 않나. 내가 노력만하면 잘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새 친구를 사귀기보다 옛 친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게 맞다. 옛 친구는 오래 묵은 장맛처럼 담백하고 고소하다. 특히 초등학교시절 소꿉장난 하던 친구들은 언제 만나도 가슴이 훈훈하다. 나는 그런 옛 친구들을 비교적 잘 챙겨왔다. 초등친구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그들과의 만남은 순수하다. 아름답다. 내가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이유도 이런 친구들이 있어서다. 그들은 늘 나를 진정으로 반겨준다. 그런 친구들과 화롯불처럼 따뜻한 우정에 푹 젖었다가 돌아오면 한 동안 마음이 그렇게 풍족해질 수 없다.

금년 칠순을 맞는 초등학교 남녀 친구들 30여명이 합동파티를 하기로 했다. 올봄 한강 <세빛섬 건벤션센터>에서다. 친구들에게 내가 그랬다. “우리는 서로가 살아있는 귀한 보물들이다. 서로 아끼면서 재미있게 살다가자. 우리들만큼 만나면 따뜻한 친구들이 얼마나 있을까. 틈만 있으면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 모든 친구들이 대환영을 했음은 물론이다.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가족과 같다.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부모형제자매처럼 든든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쉬워 손을 내밀 때 잡아주고 내 곁에 있어준다. 마음이 아플 때, 곁에서 이해해 주고 위로해 준다. 사람은 훈김으로 사니까.

우정관계에서 한 가지 조심할 게 있다. 가까워질수록 단점이 보인다. 그 단점조차도 감싸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하지 않나. 우리는 흔히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클 수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내가 완벽하지 않으니, 그런 기대는 과욕일 뿐이다. 또 하나 있다. 옛 친구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새로운 친구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친구관계는 잘 키워갈수록 익어간다. 많은 시간과 관심을 투자해야하는 이유다. 상대가 필요로 할 때 내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짧은 인생에 집중이 필요하다. 한꺼번에 수많은 친구를 사귈 수는 없지 않는가. 친구는 살아있는 보물, 보물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놓고, 늘 쓰다듬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쓰다듬어주는 친구가 있는 사람만큼 부러운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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