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쓴 칼럼 포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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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매월 이 페이지에 쓰는 <칼럼>을 편집국에 넘겼다. 편집부 기자들이 나의 칼럼에 문제를 제기했다. “정치 이 야기는 빼면 안 될까요? 정치 관련 칼럼의 경우 구독을 철회하거 나 항의 전화가 오곤 합니다. 심지어 사장님이 극우 인사냐 따지기 도 합니다. 그럴 때면 곤혹스럽습니다. 합리적인 견해라 할지라도 독자들 역시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해석을 다르게 하기 때문이죠.” 편집국 기자들의 그런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여, 애써 쓴 칼럼을 포 기했다. 무슨 얘기를 썼는가 궁금해할 것 같아 요지만 얘기해 본다. 대선정국이 열린 고국의 정치판에서 한 유력 대선후보가 “미 점령 군” 발언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여야간 그리고 좌우간 공방이 이 어졌다. 나도 한마디 한 것이다. 그것도 순전히 재미동포의 입장 에서 한 것이다.

“축하를 전해야 할 시점, 왜 하필 우방국의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 점령군’ 이란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그런 주장을 한 것인가?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해도 남의 생일을 앞두고 “미국=점령군”으 로 들리는 얘기는 신중치 못했다.”라고 전제한 뒤, 억하심정에서 ‘ 점령군’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고 ‘점령군’에 감사하면서 평소에 는 하지 않던 짓거리, 축하파티까지 했다면서 고국의 정치인들에 게도 한마디 했다. “정략적 이득을 위해 더는 지난 역사를 두고 제 입맛대로 재단하여 국민들을 갈라놓지 말라. 지난 4년은 해외동포 들에게도 끔찍한 시간이었다. 고국 정치인들의 과거사에 대한 이 념적, 정파적 논쟁 때문에 편을 가르고 줄을 서서,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과거사를 더는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대충 이 런 내용이었다.

나는 좌도 우도 아니다.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평생 살아오 면서 정치판의 ‘정’자에 가까이하거나 어느 편에 서 본 적도 없다. 다만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 위대한 나라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면 서 글을 썼다. 세계의 지도국이 되어 가난한 나라를 구제하면서, 인 류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런 저런 나의 견해를 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은 늘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 놓고 보 니 나의 생각이 늘 변해왔고, 전혀 일관성조차 없었다. 친미, 친일, 군사독재를 비판하고 싸웠던 젊은 시절의 생각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았다는 걸 나이가 들어 깨닫기도 했다. 6.25를 남침이라고 배워 김일성을 저주하기도 했지만, 통일은 결국 전쟁을 통해서 이룰 수 밖에 없다는 “통일전쟁”론을 수긍하기도 했었다. 김대중 정부 이전 인 1992년, 좌파로 낙인을 찍혔던 한겨레신문 기자로서 평양을 방 문, 취재하면서 북의 실상을 접하면서 통일 운동과 함께 북녁동포 식량돕기 운동에도 적극 가담한 적도 있다.

자신의 생각이 절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견해에 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노년이 되어서 깨닫는 말이다. 다양한 견 해를 섭렵할 때 균형사고가 가능하다는 것도 뒤늦게 깨닫게 된 것 이다. 특히 자신만의 견해나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 요한가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주요 요소라는 것을. 요즈음 소위 “대깨문”이나 “태극기부대” 같 은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심한 말 같 지만, 그들은 자기 견해보다 남의 견해에 무조건 줄을 서는 무개 념의 사람들이며, 자기 견해가 없다는 것은 다양한 견해를 들으려 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것들을 공부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 할 수 있다.

대화는 듣는 것이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처럼 들어 주어야 아이들 도 듣고 대화가 이어진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영어를 잘 듣고 이 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잘 들을 줄 알아야 제대로 답변을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정치적 견해도 그렇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견해 가 존재하고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다양한 견 해가 공존해야 강한 사회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게다. 내 의견이 중요하면 남의 의견도 중요하다.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는 물론 우리 업계도 마찬가지다. 다양을 의 견을 내놓고, 서로의 견해를 경청할 때 판이 바뀌고 발전이 따른다. 이게 지성인들이라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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