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홀린 간소한 아름다움” 무인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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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숍은 단순히 생활 잡화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 방식을 반영한 매장으로 확실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형태이다. 라이프스타일(홈&리빙)숍은 저렴한 패스트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는 싱글족의 증가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부 라이프스타일형 유통업체는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 접목으로 짧게는 2주마다 신상품을 내놓으며 젊은 고객층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라이프스타일형 유통 업체 중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며 미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무인양품”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편집자주]

무인양품의 탄생 토대가 된 “라이프스타일 강국 일본”

일본은 일찌감치 라이프스타일산업이 자리 잡았다. 두꺼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무인양품은 1980년 사업을 시작했다. 겉보기엔 너무도 평범하고 간소해 보이는 제품 일색이었다. 하지만 해외 브랜드보다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 그리고 일본인이 선호하는 심플한 디자인 등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소비자들은 집안의 생활 잡화를 하나둘씩 무인양품 제품으로 바꿔가고 있다. 무인양품 제품으로만 생활하는 ‘무지러(mujirer: 무인양품 마니아)’까지 등장했다.

무지(무인양품)의 성장

무인양품(無印良品·MUJI)은 제품 개발부터 제작, 유통까지 일괄적으로 직접 지휘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13년 매출이 2,250억 엔에서 지난해 3,435억 엔으로 3년 만에 52.6% 늘었다. 영업이익은 1,615억 엔으로 47%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현재 무인양품은 30여 개 국가에서 연 매출 3,000억 엔이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매장 수는 2016년 기준 일본 418개, 해외 362개로, 해외 매출 비율이 연간 35% 이상 급증하고 있어 조만간 일본 내 매출을 역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무인양품은 올여름 미국 브루클린과 싱가포르에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대표) 스토어’를 오픈했으며, 오는 2019년 MUJI HOTEL과 새로운 상업시설을 긴자에 열 계획도 발표하는 등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신규 매장을 늘려갈 계획이다. 무인양품은 2020년 일본 내 502개, 해외 698개 매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인양품은 어떻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위기를 기회로 “3년 전 재고, 불에 던져 소각”

2000년대 들어 무인양품에 위기가 찾아왔다. 유니클로, 니토리, 다이소 등 가성비를 내세운 업체들이 성장하며 무인양품의 영역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무인양품과 같은 유형의 제품을 30%나 저렴하게 팔았다. 그 결과 무인양품은 2001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 마쓰이 다다미쓰 사장은 전 매장을 순회한 결과 3년 전 재고도 있음을 알고 모두 소각장에 던지며 위기 극복의 방법으로 ‘충격요법’을 택했다. 이렇게 일거에 폐기한 재고만 500억 원어치에 달했다. 임직원들은 충격에 휩싸였지만, 마음 한편에는 “앞으로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자”라는 생각이 일었다. 마쓰이 사장의 충격요법이 임직원들의 마음에 변화의 불을 지핀 것이다.

“엄격한 관리와 표준화 작업”으로 경영 시스템 개혁

마쓰이 사장은 사내 제품 개발, 생산, 재고관리팀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판단, 3개 부서를 통합하는 총괄디렉터를 만들어 협업을 강조했다. 또 각 제품의 판매량 순서를 매긴 ‘인기도’를 표시해 경쟁을 유도했다. 2003년 도입한 ‘관찰(observation)’ 프로젝트는 직원들이 지인이나 일반 소비자의 집을 찾아 이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새 제품 수요를 발굴토록 한 것. 이때 동행하는 직원 2명은 반드시 서로 다른 팀 출신으로 구성했다. 같은 현상도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일반 가정집 곳곳에서 찍은 물건들과 실내 사진, 그리고 소비자 의견은 사내 디자인실에 전달돼 제품 디자인에 반영됐다. 품질도 놓치지 않았다. 직원들은 직접 외주를 주던 제조업체를 방문해 제품 상태를 확인하고 품질을 관리하도록 했다. 경영방침을 총13권, 1994페이지에 달하는 메뉴얼 북 ‘무지그램(Mujigram)’에 담아 매장마다 공유토록 했다. 무지그램에는 상품 개발, 매장 전시 방법부터 인사법, 잔돈 주고받는 법까지 세세한 규정이 담겼다. 연필이나 볼펜은 50개 항목의 제작 매뉴얼 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의자는 500번에 걸친 ‘압력 테스트’를 거쳐 합격해야 시판할 수 있을 정도다.

디자인 없는 게 디자인, 3無 전략

1. No Brand (정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라)

무인양품 제품의 특징은 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는 브랜드가 없다는 간결함이다. 대신 꼬리표에 상품의 존재 이유와 추구하는 콘셉트를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1980년 설립 당시 무인양품의 노브랜드 전략은 소수 소비자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 소비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무인양품의 철학도 주목을 받고 있다. 가나이 마사아키 무인양품 회장은 “무인양품은 ‘소비사회’의 반대자(anti-thesis)로 출발한 회사다. 많은 기업은 소비 욕망을 부추기고, 각종 프로모션 행사를 하면서 더 많은 상품을 팔려 한다. 우리는 상품에 불필요한 기능이나 특징을 넣지 않는다. ‘나답게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게 목표다“라고 말한다.

2. No Design (제품의 거품을 빼라)

디자이너 채용 공고에 ‘디자인을 하지 않는 디자이너 모집’이라는 구절을 넣을 정도로 무색·무취 디자인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제품의 개성을 줄이는 대신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적당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든다는 게 핵심이다. 가나이 회장은 무인양품의 디자인을 설명하면서 “’지금보다 약 20% 적은 재료로 제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를 항상 고민한다”라며 “제 역할을 하는 물건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한다.
더불어, 무인양품은 조금씩 생략하고, 빼내고, 간소화해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면봉이 조금 더 짧아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테이프 폭이 더 좁아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주로 이런 고민을 한다. 두루마리 휴지를 만들 때도 심지 크기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살펴보고, 수납 케이스를 만들 때는 플라스틱에 색 염료를 넣지 않고 만든다. 수건은 나중에 걸레로 쓸 수 있도록 절취선을 따로 만든다.

3. No Marketing (고객이 찾는 제품이라면 뭐든지 판다)

무인양품이 마케팅을 거부하는 점은 다른 기업이 무인양품을 쉽게 넘볼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다. 일반 소비재 기업은 세그먼트(segment), 타깃팅(targeting), 포지셔닝(positioning) 등 상세한 분석을 거쳐 목표 고객 군을 설정하고 고객 군에 따라 같은 제품이라도 차별을 부각하려 하지만 무인양품은 가장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게다가 마케팅 기본 이론인 ‘선택과 집중’도 없다. 무인양품엔 대표 상품이 없을뿐더러 의류·생활용품·문구류·식품은 물론, 직접 단독주택도 지어 파는 등 상품 개수가 7,000개가 넘는다. ‘꼭 사야 한다’가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가 답이다

굳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고객이 ‘이것이 좋다’, ‘이것을 꼭 사야 한다’가 아닌,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느낌을 얻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간단한 수건 한 장을 만들더라도 명품이라는 느낌보다 ‘이 정도면 디자인적으로 적당하다’라는 수준의 가격과 품질을 추구하며 불필요한 생산과정과 디자인의 거품을 빼고 합리적인 디자인과 가격을 추구해 생활 혁명을 주도했다. 보통 사람들이 사고자 하는 물건은 ‘품질은 안 좋지만, 그저 싼 물건’이 아니라 ‘품질은 좋으면서도 저렴한 제품’ 그런 물건을 구매하고 싶은 소비 심리를 정확히 겨냥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주 고객층 없으니 수요층 더 넓어져

무인양품에는 타깃 고객층을 따로 두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20~30대 여성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회사원이나 가족 단위 고객도 적지 않다. 무인양품의 디자인에 이렇다 할 ‘개성’이 없고, 무인양품 디자인이 특정 고객층이 아닌, 그저 사람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주 고객층을 설정하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범용성이 뛰어난 디자인에 집중한 결과, 역설적으로 수요층을 더 넓힐 수 있었다. 단순해 보였던 무인양품은 알고 보면 그 제품 하나하나에 정말 수많은 고민이 담겨 있음을 알수 있다. 무인양품 스토어 브랜드를 성공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콘셉트, 좋은 제품, 고객과의 소통, 그리고 스토어에 들어서는 순간 고객들이 느끼는 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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