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해 보는 ‘트럼프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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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가 열렸다. 황당하면서도 힐러리의 낙선이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가진 장사꾼이 자기신념이 강한 정치꾼보다는 대사를 그르칠 가능성이 오히려 낮기 때문이다. 세상이 온통 시끄럽고, 앞으로 크게 잘못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트럼프의 국제정치기조는 2차 대전 후 미국이 쌓아온 전통 외교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푸틴과의 해빙무드 조성부터 이채롭다. 푸틴의 크림반도 점령은 물론 국제법에 반하는 주권침입이지만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입장인 듯하다. 역사적으로도 크림반도는 러시아 땅이다. 크림반도 내 68%를 차지하는 러시아 민족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배척과 압박에 푸틴이 맞선 성격도 강하다. 오히려 오바마의 시비가 핀트를 맞추지 못했던 것 아니었나 돌아보게 된다. NATO는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 창설됐다. 소련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사실상 NATO의 존재이유는 크게 보아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동유럽 국가들의 불안은 여전하지만, 트럼프는 이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러시아의 존재가 두려움의 대상이기 보다 파트너로서 공존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동지역 트럼프의 평화구상 역시 긍정적 측면이 강하다. 불안정의 뇌관 IS를 제압하고 이슬람의 원리주의를 막기 위해 러시아와 손잡겠다는 것인데, 러시아의 이란ㆍ터키ㆍ시리아까지 연대를 미국이 암묵적으로 지지해 준다면 중동 평화정착의 단초가 될 것이다. 완전한 평화는 아니겠지만 저강도 투쟁의 현상유지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을 듯 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동안의 엄청난 인명살상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이다.

미ㆍ러 동반자 관계는 남아시아 지역의 안정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중국의 굴기로 인해 남사군도와 센카쿠열도를 중심으로 조성된 갈등과 불안은 작아질 수 있다. 미국 국제외교의 사이드 킥인 우리의 입장은 강화된다. 한ㆍ러의 협력관계를 한차원 높일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될 수 있다. 이와함께 대중국 외교카드를 하나 더 쥐게 됨으로써 남북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희망사항이지만 러시아를 통해 북과 핵동결을 위한 협상 길도 마련해 볼 수도 있다.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트럼프가 외교의 무경험자로 불안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뒤돌아보면 경험이 많은 리더들의 오판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경우를 종종 봐왔다. 이라크전으로 중동을 엉망으로 만든 딕 체니와 리비아를 괴멸시킨 힐러리가 대표적이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러시아와 손잡고 ‘케이스바이 케이스’로 협상을 통한 해결의 원칙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교정책을 추진하겠다는 트럼프의 유연성이 경험자들에 비해 더 기대가 되는 이유다. 팍스뉴스의 O’Reilly와 인터뷰가 재미있다. “푸틴이 살인자인줄 모르나?”라는 질문에 트럼프는 “우리는 결백한가?”라고 답한다. 위선의 세계에서 모처럼 느껴보는 카타르시스다. 살인이 도처에 널린 세상이다. 더 큰 살인을 막을 수 있다면 누구든 함께 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 트럼프가 힐러리 같은 정치가보다 훨씬 더 믿음직하다. “어떤 최고의 전쟁도 최악의 평화보다 못하다”는 로마 키케로 말을 상기해 본다. 트럼프가 모색하고 있는 평화의 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한편, 지난 달 UN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 성명서에서 그는 600만 희생자 유태인들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아 이스라엘의 반발을 샀다. 그동안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유태인만을 위한 특수 케이스로 언급해 온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를 깨뜨렸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착지 건설도 트럼프는 의외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의한 2국가 공존 정책을 밀고 갈 것으로 믿었다. 그에게 크게 박수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 백악관 회담에서 슬쩍 물러섰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그에 대한 기대가 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멕시코나 오스트리아 같은 약소국에게는 큰소리치더니, 이스라엘 같은 돈 많은 강국에게는 머리를 숙이는 그에게서 비굴함과 허약함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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