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철 회고록 (최종)]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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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로이얄사의 윤영철 전무는 마이크로야끼 휴먼위빙 제품을 만들어 성공시킨 후, 또다른 Remy human weaving 제품을 개발했다. 순수 인간 헤어와 가장 가까운 제품을 내놓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우리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서울 소재 대보(주)의 유충현 사장과 함께 칭따오에 “따보” 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당시 한국의 임금이 400불 정도인 반면 칭따오는 40불 밖에 안되었다. 대보가 미싱과 기타 필요한 도구를 가져갔고, 조선족을 매니저로 고용해 한족 인력을 동원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완제품을 받아보니 대부분 탱글이 져있어 도저히 판매가 불가능했다. 공장에서는 선적시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이송 중에 습기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습기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제품에 또 다른 하자가 생겼다. 이번에는 케미컬 처리가 미숙했음이 드러났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드디어 완벽한 제품이 나왔다. 우리는 대보, 보양을 통해 최고품의 Remy human hair “Tiffany”를 출시했다. 시장에서 뜨거운 인기를 모았음은 물론이다.

한편, 로이얄사가 개발한 마이크로 야끼 휴먼헤어 제품이 미국시장에서 히트하자, 중국 현지에서 원모를 쉽게 그리고 유리한 조건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장점을 이용한 중국 현지 공장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민창, 따보 공장의 기술을 아직 따라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Remy Hair를 만들어 내는 동안 중국의 수창(허난성) 소재 중국인 소유 공장들이 마이크로야끼 휴먼헤어 개발에 성공했다. 그들중 하나가 오늘날 중국의 최대 헤어생산 공장을 자랑하는 Rebecca 사다.

Rebecca사는 현지 한족 소유 공장으로서 무엇보다도 원모를 비교적 값싸게 수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중국 현지에 세운 한국인 공장(따보) 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에서 상품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이얄사가 거의 독점하다 싶이 했던 휴먼헤어 위빙 상품을 그들은 5년간의 노력 끝에 성공, 그것도 Rebecca사는 2불 이상 값싸게 공급할 수 있었으니 우리 Royal사의 경쟁 업체들에게는 엄청난 우군이 생긴 것이다. 이때 동부의 한 업체가 재빨리 휴먼헤어 시장에 대대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업체는 그동안 신생회사로서 휴먼헤어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Rebecca사와의 협력으로 오직 신세틱헤어 제품에 주력해 성공적인 가도를 달렸었는데, 또 하나의 날개를 단 것이다.

그런데 우리 로이얄사는 휴먼헤어 공급의 선두 주자로서 휴먼헤어 제품 개발 및 판매에만 주력하고 만족한 나머지 신세틱 제품개발을 소홀히 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휴먼헤어 첫 개발자였던 윤영철 전무는 “우리는 휴먼헤어제품 장사를 잘 하고 있으니, 신세틱은 동부업체가 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한편 윤전무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우리 Royal사의 제품개발 담당 임원들 간에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세틱 제품을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제기되었다. 그리고 거래 공장에서도 신세틱 제품 샘플을 계속 보내주었다. 하지만 정작 결정권을 쥐고 있었던 윤영철 전무는 여전히 휴먼헤어에만 집중했고, 기타 패키지 개선 및 광고 혁신 쪽에 만 온 시간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밤 10시까지 일을 해도 부족할 정도로 업무량이 과도했다. 제품개발, 공장 오더, 새 패키지개발, 창고관리…1인 5역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에피소드지만, 개발실에 쌓였던 수많은 샘플 박스를 다른 회사 사람들이 먼저 보고 크게 히트 친 일도 있었다. 그만큼 당시에 신세틱 제품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는데 로이얄사만 그걸 외면하고 있었다.

Rebecca를 등에 업은 동부업체가 저렴한 가격대의 마이크로 야끼 제품을 시중에 내놓으면서 로이얄 제품의 휴먼헤어 판매도 밀리기 시작했다. 우리 제품을 만들어준 공장(민창)에선 도저히 새로운 경쟁 가격에 맞출 수 없었다. 결국, 10년 만에 민창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신세틱 제품 취급문제로 윤영철 전무와 영업부 직원들 그리고 내가 실랑이를 벌이면서 결국 윤 전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우리 회사로서는 윤 전무의 퇴사는 아주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회사 최고 경영자인 내가 회사경영에 더욱 집중해야 했을 중대한 시기에 윤 전무에게만 모든 걸 일임했던 나의 실수가 제일 컸다.

“휴먼헤어 주력하다, 신세틱 시장 놓치기도”

윤 전무 퇴임 후 새로운 임원을 바꾸고 채우는 일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그러나 계속 회사의 리더십은 삐걱거렸고, 영업은 예전 같지 않았으며, 타경쟁업체들은 날로 급성장해 갔다. 업계 최선두를 달리던 로이얄은 점차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시장 상황이 새롭게 변했다. 휴먼헤어 제품 시장이 70에서 30으로 줄어들고, 반면 신세틱 시장이 30에서 70이 역전되었다. 로이얄은 그 갭을 메꾸기가 어렵게 되었다. 뒤늦게나마 신세틱 시장을 쫓아갔지만 타 경쟁사는 이미 시장점유율에서 크게 앞서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내 나이도 80에 가까이 되었다. 이제는 나도 이 업계에서 은퇴할 때가 왔다. 다행스럽게 이제 새로운 임원들로 구성된 운영진이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가고 있다. 미래의 전망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 또 한 번 도약할 기회가 올 거라 믿고 있다.

한편, 경영과 소유의 구분도 생각해 보고 있다. 나의 차남(목회자)이 경영에 참여해 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결정에 달려 있다.

우리 헤어 업계는 요즈음 펜다믹 와중에 제품공급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 1년 이상 이 상태가 계속되지 않을까 한다. 도소매 모두가 상호 이해하고 협조하면서 이 난관을 극복해 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밝다. 시장은 계속 확장되고 다변화할 것이다. 흑인고객을 중심으로 히스패닉 그리고 혼혈의 다양한 인종이 점차 증가하면서 흑백의 구분이 아니라 헤어 텍스처로 고객이 분류될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생산/공급되었던 헤어 상품이 현재는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미얀마 등으로 생산기지가 다변화되었다. 중국 원모 가격 및 인건비(타지역 3-4배)가 엄청 상승하였다. 인도네시아 덕에 겨우 옛 가격에 맞추고 있지만 비교적 값이 싼 인도 원모조차도 크게 웃돈을 주지 않으면 구매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신세틱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며, 생산기지는 아프리카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신세틱 제품 분야는 특히 제품의 개발에 승패가 달려 있다. 그런데 애써 연구해 개발한 제품을 쉽게 카피하는 일들이 흔해 우리 업계는 적정 마진을 취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 업계가 보완해야 할 단점이다.

온라인 판매도 우리 업계에 타격을 주고 있지만, 이 문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고객은 헤어제품의 경우는 만져보고, 트라이해 보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반 상품처럼 가발을 Target 같은 수퍼마켓에서 디스플리에이대에 진열해 놓고 판매했던 시절이 있었다. 실패했었다. 소매점은 다양한 방법의 서비스를 추가하면 할수록 판매 고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스토어 업그레이드 역시 판매 고와 직결된다.

소매점 오너십의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한인 소유 소매점 숫자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도매업체의 인력 문제, 그리고 대우의 문제도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우리 업계는 급격히 미국 주류 비즈니스쪽으로 편입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비 역시 미리 해두어야 한다.

그동안 부족한 기억을 더듬으며 옛날 일을 회고해 보았다.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한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마음은 변함이 없다. 늙고 병들어 세상을 이별하는 순간까지 서로 감사하며 사랑하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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