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힘이 되어준 직장동료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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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달에도 여러 차례씩 통행금지 시간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젊을 때이고 총각이었고 또 언제나 늦게까지 야근을 했기에, 일이 끝나고 나면 배가 고파 꼭 야식을 좀 먹어야 되고, 그러다 보면 술도 한잔 하고, 통상 밤 12:00가 넘겼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를 잘 이해해주고 서로 잘 어울리던 동료 “K”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 좋아했다. K는 양친 부모님이 계시고 동생들과 단독 주택에 살았었다. 나는 연립주택 독채에 나 혼자서 살았다. K는 아마 1주일이면 절반은 일이 끝나면 술도 마시고,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시간을 지냈다. “K”는 나보다 두 살이 위이지만 총각이었고 입사일도 직급도 나보다 위였지만, 업무상 대부분의 일감이 개발실에서부터 나오다 보니 긴밀한 협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 모든 처지가 비슷하다 보니 자주 어울렸다. 술값이나 밥값이나 네 돈이나 내 돈이나 구분이 없이 서로가 먼저 지불하는 사이였다.

우리는 통행금지 시간을 자주 위반한 편이었다. 경찰순찰차나 방범대원과 부딪치기가 일수였다. 당시는 파출소에 경찰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민간인으로 구성된 방범대원들이 주로 야간순찰을 했었다. 이들을 피하기 위해서 K는 골목으로 들어가자고 했고, 나는 주로 큰길로 가자는 쪽이었다. 그런데 당시는 아파트가 아니고 주로 단독주택이어서 대부분 개를 기르는 집이 많았다. 골목길을 택하면 개만 짖어대고 순찰원한테 발견되면 더 난처해질 수 있었다.

내가 택한 방법은 큰길에서 순찰차와 정면 승부를 거는 것이었다. 순찰차를 만나면 “야근하다 늦었으니 가까운 여관에 좀 데려다 달라”고 오히려 부탁을 하면서, “고생하시는데 야식이라도 하시라”고 용돈을 좀 내밀면, 대부분 이해하고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여관주인에게 특별한 대우까지 당부해 주기도 했다. 어차피 통금위반으로 잡혀가면 파출소에 새우잠을 자다가 새벽이 되면 경찰서로 보내지고 다음날 즉결재판에 나가 벌금을 내야 석방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돈은 돈대로 들고 다음날 업무가 안 되기에 나는 그런 방법으로 처리하곤 했던 것이다. 나는 무엇을 숨기려 하기 보다는 현실을 현실대로 오픈 하고 해결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내 성격에 맞았다. 통행금지 시간이 지나면 파출소에 들어가 아예 사정얘기를 하고 부탁하기도 했다. 파출소에서는 야간통행증을 해주는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통행금지에 예외였던 화물차를 이용하는 것이었는데, 부탁하면 가까운 곳에 여관에 대려다주곤 했다.

K는 나의 처신을 늘 공감해주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그 시절 개발이라는 중책을 맡아 매일 업무에 몰두하다 보니 항상 뒷골이 무겁고 심한 두통이 있어 진통제를 늘 책상에 두고 살았다. 옷 주머니에도 언제나 넣고 다니며 수시로 복용하고 하였는데, K는 이런 나를 생각해서 내가 힘들어하면 수시로 나를 차에 태우고 바람을 쏘여주고 들어오곤 했다. 북악스카이웨이 드라이브 등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기도 하고 걸어서 가까운 곳에 함께 다니며 나의 머리를 식혀주었다.

K와 함께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참으로 많다. 나와 늘 함께 해준 직장 동료가 있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는 일상의 활력이었고 행복이었다. 지금까지도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이유다. 또 한 분이 있다. 나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격려해주신 사장님이다.

나는 휴일에도 회사에 나와서 혼자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연구개발이란 것이 누가 무엇을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나 자신이 무언가를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숙제를 누가 내준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경우를 가상하고 고민해 보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이런 나의 모습을 자주 보아왔기에 휴일인데도 회사에 나오셔서, 혼자 앉아있는 나를 보시고, “다음 날 하라”고 귀가를 종용하시면서, 자기 차에 태워 식사나 술도 사주셨다. 때론 자기 집으로 대리고 가셔서 저녁 식사와 술을 함께 하고, 그분 댁 2층 방에서 재워주시고 다음 날 함께 출근하셨다. 그런 사이에 회사업무 얘기도 많이 했었다.

직원 가운데는 이를 질투하듯 곱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직원 회식 때면 술의 힘을 빌려 나에게 “당신은 사장님과 특별한 시간을 갖는 기회가 잦은 데 무슨 얘기를 나누는가?” 묻기도 했다. 나는 “등산을 가도 정상까지 가는 과정에 여러 개의 등산로가 있다. 각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코스를 선택해 가다보면 정상에서 모두가 만나게 된다. 다만 공교롭게도 좋아하는 코스가 같다면 정상까지 가기 전이라도 중간 중간 쉼터에서 비슷한 사람끼리 자주 만나게 되지 않겠는가? 아마도 사장님과 나는 같은 코스를 선호하는가 보다.”고 웃으며 답하곤 했다.

목적은 같으나 방법이 다른 사람은 결국 목적지에나 가야 만날 수 있지만, 중간에서 만나는 기회가 없다. 사장님과 나는 비즈니스의 방법과 생각이 같았기 때문에 자주 함께 했었던 것이다. 특히 그분은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깊은 분이었다. 내가 총각으로 혼자 지냈기에 가끔 댁으로 나를 데려가서 집에서 식사도 같이 하시고 2층 방에서 재우기도 하시며, 생각과 비즈니스 방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특별히 나를 더 배려해주셨고, 많은 사랑을 나에게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나를 알아주고 내 생각을 공유해 주는 직장의 최고 경영자를 만나는 것은 분명히 복(福)이다. 그런 복은 결국 내가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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