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시대, 본질에 집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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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세계한상대회 강연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기침체”란 말이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경기가 좋았던 때가 있었나? 알고 보면 “경기침체”라고 했던 때가 경기가 좋았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그처럼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있다.

작년도는 극심한 내수시장 불황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린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일산시 땅에 <EmartTown>을 개설했다. 지난 1년 1200만이 넘는 숫자의 고객들이 이 스토어를 찾았다. Emart스토어의 년 평균 입장객 1백-8백만을 훨씬 뛰어 넘었다. 이런 성공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오픈 전 300만 인구 일산은 마트가 포화상태에 있었다. 차로 10-15분 안에 롯데, 현대, Costco 등 대형마트가 10개 이상이 있었다. 우리가 지을 마트 대지는 근처에는 대중교통 수단도 없었다. 고객들에게는 자기 집 앞에 대형마트 스토어가 있는데 굳이 먼 곳에 위치한 마트에 쇼핑하러 올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이었다. 주변 모두가 안 된다고 반대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세계한상대회에서 특강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세계한상대회에서 특강

대안을 생각했다. 이마트 타운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단지 이마트에 타운이라는 용어를 붙인 것인데 결과는 엄청나게 달랐다. 과거에 이마트가 싸고, 편리한 대형마트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타운을 만든다”는 것은 고객들이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새로운 목적지(Destination)를 만드는 것이었다. 단순히 쇼핑하는 곳이 아니라 놀러오는 곳으로,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곳으로, 다시 말하면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스토어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 전혀 다른 대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Peacock Kitchen” 아이디어 실행

대안은 새로운 콘텐츠를 찾는 데 있었다. 그 첫 번째 본보기가 <Peacock Kitchen>이었다. 상품을 먹고 즐길 수 있는 경험중심의 스토어로 만든 것이었다. 단순한 제품 브랜드를 서비스 브랜드로 확장시킨 것이다. 국내에서는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그로서리와 레스토랑을 겸비한 새로운 형태의 “그로서란트”란 매장을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는 peacock 상품을 구매할 수도 있고, 맛있는 요리도 즐길 수 있고, 음식의 각종 식재료와 주방기구까지 구매할 수 있다.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스토리 경험 및 식문화까지 추가했다. 고객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고객들은 Peacock Kitchen은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재미도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가전 매장을 부인과 함께 쇼핑을 동반해 온 남자들의 놀이터로 독립시켰다.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고 지루해 하는 아내와의 동반 쇼핑, 이걸 바꾸자는 아이디어였다. 남자들의 놀이터로서 Electro-mart에서는 드론, 전자기기 조작과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기기들을 오픈하고 심지어는 술과 커피를 즐기는 Bar도 만들었다. 전자오락실, 야구연습장도 추가했다. 남자들이 제 발로 들어와 이런 것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고객들이 매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서 즐기는가에 따라 마트의 승패를 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경기침체? 경기가 좋았던 시절이 있었나?”
고객의 시간을 가져오자

유통업자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월마트의 샘 월터스의 명언이 있다. “누군가 내 비즈니스를 잠식하려 한다면, 내가 내 스스로를 잠식하라.”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는 전략적 베팅을 했다. 우리가 우리끼리 경쟁하면 할수록 고객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을 제공하게 된다. 그런 다양한 선택 때문에 고객들은 우리를 인정하고, 우리를 다시 찾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렇게 <EmartTown>은 탄생했다. 그리고 이제는 지리적인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찾아오는 최고의 마트가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1200만의 60%가 일산이 아닌 서울시내 다른 지역에서, 심지어는 지방에서까지 찾아온다는 것이다. 고객들은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에서 쇼핑한다는 룰을 깨버린 것이다.

안정의 덫, 성공의 덫

이와 같은 얘기는 내 자랑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도 <EmartTown>을 만들기 위해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했다. 신세계처럼 시행착오를 많이 하는 업체도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얘기는 혁신에 관해서 말하기 위한 것이다. 변화와 혁신, 수없이 진부할 정도로 들었던 말이다. 혁신 안 하면 망하기 때문이다. 혁신 뒤에는 이런 절박함이 있다. 혁신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의 입장료가 되어버렸다. 오늘의 나를 만든 성공 공식으로는 내일의 나를 만들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안정적인 사업일수록 혁신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 절박하게 다가오게 된다. 우리 신세계처럼 안정적으로 커온 기업일수록 더욱 더 큰 위기의식을 느낀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위기감이 더 커졌다.

절박함의 근원은 뒤 따라 오는 경쟁업체들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게임의 룰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신세계가 전략의 변곡점에 도달했다. 전략 변곡점이란 그간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던 전략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말한다. 기존의 성공전략을 반복적으로 더 잘 실시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과거와 똑같은 방식의 전략으로는 성과가 나지 않는 상황을 맞았다.

이와 같은 전략의 변곡점에 이르면 두 가지 문제에 부딪친다. 첫째 고객이 바뀌고 새로운 고객이 탄생한다. 고객은 더 스마트하고 다양해진다. 누가 우리의 경쟁자인가를 구분하지 못하고 알기 어려워진다. 지금까지 치고받고 경쟁해 왔던 경쟁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다. 경쟁자와 우리가 모두 함께 망할 수 있다. 이게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함께 마트에 가서 잔뜩 쇼핑을 해서 집에 저장해 두고 살았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 하나면 앉아서 원하는 상품을 원하는 시간에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당일 배송도 당연시 되고 있다. 옴니채널의 시대, 소비자가 이미 옴니채널이 되어버렸고, 유통은 아직 쫓아가는 시대에 있다. (* 옴니채널이란 소비자들이 상품검색부터 구매까지 다양한 채널,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 등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성공한 기업이나 사업은 다르다. 성공한 기업(사업)은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변화는 기업(사업)이 아니라,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먼저 오기 전에 먼저 변화하는 기업(사업)이다. 성공하는 기업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능동적으로 먼저 혁신을 하는 기업이다.

문제는 혁신을 위한 혁신을 한다는 데 있다. 껍질만의 혁신이 되면 혁신을 공부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이런 혁신은 본질을 이해 못한 채 처방전만 내 놓게 된다. 방향이 중요하다. 방향성 없으면 전략적 근시안을 겪게 된다. 성공증후군에 빠진다. 홀인원 중독증상이란 말이 있는데 늘 한방에 볼을 홀에 넣으려는 것 때문에 조바심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업을 인수하거나 다른 사업에 투자하거나 혹은 새로운 비즈니스에 무조건 자원을 퍼붓게 된다.

진정한 성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원, 역량, 기술 등을 바뀌는 고객의 관점에서 다시 새롭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편집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신세계의 업의 본질은 30년 전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친필로 남겼다. 별세 8개월 전이었다. “고객제일” 그 속에 답이 있었다.

그런데 고객제일이란 말은 아주 흔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고객제일은 우리가 존재하는 가치이자 이유다. 다만, 가치는 변하지 않고,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을 새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실현하는 방식이 그 옛날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당시 방식은 소위 ‘친절’이었다. 소비자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부르는 게 값이었다. 판매자의 마켓이었다. 하자 교환은 꿈도 못 꾸던 시절, 이 때 신세계는 친절을 부르짖었다. 합리적 가격으로 판매하고, 교환해 주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방식이다.

고객이 바뀌었다. 누가 우리의 경쟁자인가?

고객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가격 걱정 없이 친절한 서비스와 함께 백화점과 같은 쾌적한 공간에서 풍족하게 서비스를 받는 것을 원하게 되었다. 우린 그런 상황에서 E-Mart를 오픈하고 대량매입으로 최저가 서비스, 즉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항상 싸고 편리하게 제공함으로서 모든 고객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이 신세계의 두 번째 업의 본질이었다.

이런 두 번 째 업의 본질의 시대도 지났다. 이제는 친절한 서비스와 싸고 편리하게 상품을 제공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나는 선언하고 싶다. 이제는 놀랄 만큼 고객들이 스마트해졌다. 이마트가 제일 싸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이제 고객들은 가격이나 품질, 친절 서비스,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쟁업체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팔려는 가격의 치킨게임을 했다. 지금은 그런 건 소용이 없다. 모바일 시대다. 고객들이 상품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상품을 편리한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쇼핑 그 자체가 자신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적합해야 한다. 가격이 아무리 싸도 나와 어울리지 않으면 쇼핑하러 가지 않는다. 고객은 상품의 가치 위에 새로운 가치를 원한다. 시간의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신세계의 업의 본질을 재정의 했다. 신세계의 고객제일의 실현 전략은 고객의 삶에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라이프 쉐어(life share) 기업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시장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마켓 쉐어(market share)기업이었다면, 이제는 고객의 생활 속에 신세계가 얼마나 들어가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객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신세계의 점유률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객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고객들이 보다 나은 삶,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가치를 제안을 하기 위해서 고객과 대화하고 교감하고, 고객과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것, 이제는 이것 고객제일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옴니채널이 된 것은 유통이 아니라 바로 고객

고객의 불만에서 기회를 찾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 고객의 불만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협소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 고객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있는가? 그들의 일상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고객의 삶 속에 깊이 들어있는 니즈와 원칙, 즉 고객 자신도 모르는 불편함과 욕구를 찾아내서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실현 시키겠다는 전략, 정말 고객에게 광적으로 다가가겠다는 것, 이것이 오늘의 고객 제일주의 전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혁신의 방향을 정하고 난 후에 우리는 업의 본질을 이렇게 재정의 했다. 우리는 직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마트타운은 하나의 본보기이다. 고객들은 쇼핑을 상품 구입이 아니라 여가 선용의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고객을 하루 종일 스토어에 머물게 하자는 것이었다. 연애하는 것처럼 고객과 함께 있는 시간을 먼저 쌓아야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고객의 시간, 기억, 경험을 끌어내는 싸움이다. 그들에게 이것을 제공해 주면 상품 판매는 자동적으로 된다. 앞으로 유통은 고객들이 원하는 이런 세 가지를 점유한 자가 승자가 될 것이다. 다른 업계도 다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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