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뷰티서플라이 스토어를 인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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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약이라더니 이제 흑인들에 대한 선입견도 사라졌다. 서로 마주 보며 어려움을 나누게 되었고 손잡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웃이 되었다.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X-ray grid 사업도 손을 떼고 신문과 잡지만 의존하기에는 불안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한다고 이작저작 체하지 않고 헤쳐 나가고 있었다.

다만, 뷰티타임즈의 경우 신분문제를 해결해 주고 어렵게 훈련시켜서 함께 일할 만한 하면 퇴사해 버리는 직원들의 빈자리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직원, 새로운 교육은 경제적 시간적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었고, 심적인 고통도 컸다.

한편,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비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K는 우리 뷰티타임즈 직원들이 뷰티산업의 실습에 참여하고 수입원도 좀 더 늘려야겠다는 이유를 대며 뷰티서플라이 스토어를 하나 운영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실습장이 필요한 줄은 알겠지만 해결할 재력도 능력도 고갈이 되어버린 상황이라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막상 실습장이라고는 하지만 그 일이 또 내게 떠 맡겨질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러던 어느 날 K는 기어이 이웃에 있는 뷰티 서플라이 스토어를 인수하기로 했다면서 키를 내 앞에 내 밀었다.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던 아이들도 극구 말리긴 했지만 허사였다. 우리의 사정상 스토어를 하긴 해야하는데 여러 가지로 엄두가 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미 계약을 하고 스토어 키를 받았으니 약속은 지켜야하는데… 고민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은행으로 달려갔다. 항상 우리를 도와주려고 애쓰는 은행직원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부탁을 했다. 그도 ‘너라면 잘 할 것이다’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며 선뜻 융자를 허락해 주었다. 스토어 인수금의 2/3를 은행에서 얻었다. 1/3은 뷰티서플라이 비즈니스 베테랑인 후배에게 빌렸다. 고마운 그에게 늘 마음의 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책상 앞에만 앉아서 키보드만 두드리며 살아온 사람들이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눈 질끈 감고 스토어 리스 계약도 체결했다. 리스기간은 5년 계약에 5년 옵션인데 전 주인이 5년을 쓰고 남은 옵션 5년만 우리가 사용하게 된 것이다.

9월의 첫 월요일은 Labor Day이다. 공휴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스토어 문을 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장사를 하려니 어디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었지만 팔을 걷어 부치고 한번 덤벼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장사꾼의 똥은 개도 안 먹는 다는데 나도 그 똥 한번 싸 보자’라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우선 계산대를 어떻게 작동 하는지를 배웠다. 손님이 많은 것은 좋지만 한사람이 와도 그저 떨리고 안절부절 했다. 손님이 무슨 물건을 물어 봐도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전 주인 말이 ‘당신들은 교과서를 만들었으니 잘할 것’이라고 했지만 공부 잘한다고 세상 잘 사는 것이 아니듯, 뷰티타임즈 발간과 스토아 운영은 별개의 문제였다.

상품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는 손님을 데리고 스토어를 한 바퀴 돌았다. 손님이 먼저 물건을 찾아주었고 이름까지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처음에는 손님들로부터 상품 이름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디어가 생겨났다. 멀리 계신 베테랑 선배님께 전화를 걸어서 장사수완을 배우기도 했다. 그분 말씀이 “장사는 멋과 맛도 중요하지만 구색이란다. 빈자리 없이 상품을 비치해 두면 다 팔리게 마련이란다. “한 뼘의 빈자리라도 비워 두지 마라”고 덧붙여 일려 주셨다. 장사를 해 보니 과연 그러 했다. 이미 5년이 된 스토어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품은 갖추어져 있었지만 도매상에 가 보면 또 새로운 상품들이 눈에 들어와 상품에 대한 욕심이 자꾸만 생겨 구매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상품을 진열할 공간이 부족하여 내부 디스플레이 공간도 더 키웠다.

역시 장사는 쉽지 않았다. 판매고에 비해 쌓이는 돈이 적어서 무슨 일인가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월마트에서 목격한 일이다. 어떤 고객이 입구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삑-삑-’하는 소리가 났다. 나도 놀라서 월마트 직원에게 물어 보았다. 왜 저런 소리가 울리는가? 하고 물었더니 시큐리티(도둑방지) 센서 시스템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는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입구 쪽에 시큐리티 안테나가 보였다. 나는 “바로 저것이로구나”하고 광고지를 뒤져서 시큐리티 시스템을 설치해 주는 회사를 찾았다. 생각보다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치를 했다. 내친 김에 감시 카메라 시스템까지 설치하였다.

기계가 작동하면서 수없이 문제가 발생했다. 손님들이 나갈 적마다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이 지나갈 때도 ‘삑-삑-’ 소리가 났다. 이렇게 기계를 설치한 후 좀 도둑 잡는 일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어른 고객들에게는 좀 더 완강하게, 가끔은 경찰까지 동원하여 다 잡았다. 아이들은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훈육했다. 두어 달 동안 그렇게 실랑이를 하고나니 점점 ‘삑-삑-’하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북적대던 스토어에 손님들도 줄었다. 손님 숫자가 줄어드니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짜배기 고객만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고, 매상고도 높아갔다.

또 한편. 다행스러웠던 것은 스토어가 뷰티타임즈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새로운 기자들을 채용한 경우 본인들이 스토어에 직접 가서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직원 교육이 수월해졌다. K도 시간만 나면 스토어에 가서 마네킹을 들여다보면서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직접 계산대에 서서 손님들에게 미소 짓는 연습도 하며 현장 실습을 열심히 해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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