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와 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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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미국한번놀러오라”서울방문시만나는학교동창생들마 다했던얘기가현실이되었다. 팬데믹으로여행이쉽지않은상 황에도대학학우들셋이지난달그먼길을마다하지않고우리집 을 찾아 주었던 것이다.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의 첫 구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 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와주니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니 군자 답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 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한가하고 외로운 노년을 세인트 루이스 같은 한적한 시골에서 보내고 있는 나같은 노인에게는 이 런 공자님 말씀이야말로 커다란 위안이다. 특히 이역만리 조국에 서 친구들이 찾아 와 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사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해외로 나왔다. 그래서 학교 동창 생들과 깊은 우정을 나눌 기회가 그다지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아 르바이트를 해야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을 정도로 오로지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만 했었다. 학업중 군대를 가야했었고, 돈 몇푼 받기 위해 월남전까지 참여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중동으로, 그리고 학업차 미국에 왔다가 어쩌다 이곳에서 주저 앉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이유로나는한국을방문할때마다드문드문친구들을대하 곤 했었지만, 그저‘학우’로서 의레적인 인사치례가 전부였다. 난 학우들과의 그런 사이가 못내 아쉬웠고, 외로웠다. 친구라고 하면 서도친구에대해서아는게별로없었기때문에마음이항상허 전 했었다.

이번에 방문한 친구들과 나는 우리집에서 20여일 함께 먹고 자고 놀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모두가 70 이 넘은 나이, 우리는 “이제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면서 서로를 즐겼다. 옛날 ‘자치기’ 친구들처럼 우리는 매일 골프를 즐겼고, 여기저기 좋은 식당을 찾아 맛과 대화를 즐겼다. 포 커게임으로 밤을 세우기도 했다. 20일간의 시간이 서로를 더 깊이 탐하게 했고, 더욱 깊이 알아가게 했다. 우정의 간극이 그만큼 좁혀

졌다. 비로서 진짜배기 친구가 된 것이다. 친구는노년의삶의기둥이다.세학우는이제나의노년의막강한 기둥이 되어줄 것이다. 아내도 외롭게 지내던 내가 친구들과 매일 즐거운시간을갖고즐기는걸흡족해했다. 그것도나에대한아내 의큰배려다.아내의수고가컸음은물론이다. 삶은내가들인수 고만큼 풍요로워진다.
방문한 친구들은 모두들 나름대로 한국사회에서 인정받은 인재들이 였다.젊은시절하늘높은줄모르는큰야망과태산같은자부심도 가지고있었다.하지만그런건이미옛일이다.이제는모든것을내 려놓아야 할 나이, 그래서였을까? 어린이로 돌아간 우리는 노는 게 그저 즐겁기만 했다.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우리는 더 이상 허장성세도 부리 지 말자, 과거를 연연하는 유치한 노인네도 되지도 말자. 내려 놓고 낮추고 양보하고 겸손하자.” 이런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세상을 떠나 는마지막순간까지좀더가까이서우정을나누기로다짐했다. 그 렇다.시간이많이남지않았다.이제는좁히고줄이자그러나더깊 게 깊게 살다가자. 그런데이제는친구들이너나나나할것없이여기저기몸도망가지 고, 허리도 구부정해지고, 기억력이 약해져 ‘거시기’를 연발해야 대 화가 이어졌다. 슬펐다. 늙고 병들어 떠나는 인생, 이제는 누가 뭐라 고 해도 건강이 첫째다. 건강한 나이로 오래 살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좋다지않나. 옛명성따윈 입에올리지도말자.입은닫고 지갑은 열라 했다. 누구에게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자.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맘껏 주고 가자. 옹고집일랑 부리지 말자. 노망이다. 마 지막 운명의 종이 칠때까지 품위를 잃지 말자.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 해 우리는 한 평생을 열심히 달려오지 않았는가.
세인트루이스 공항을 떠나는 친구들을 배웅하며 나는 일일이 안아주 었다. 가벼웠다. 하지만 가슴은 뜨거웠다. 순간, 마지막일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했다.
고마운 친구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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