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Day를 몰랐던 어느 흑인의 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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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Father’s Day를 맞아 뉴욕 타임즈에 게제된 한 흑인 기고자의 에세이가 내내 내 가슴을 저리게 했다. 기고자는 소 년 시절 Father’s Day가 무슨 날인지 몰랐다는 서두로 얘기를 꺼낸다. 단지 독립기념일이나, 센페트릭데이 같은 그런 날인 줄로만 알았다는 것, 자신의 소년 시절 내내 아버지가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그는소년시절자기를도와주고바른길로인도해주 었던 분들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들이 곧 교회의 목사, 장로 그리고 집사들이었다. 그 들은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었으며, 늘 격려와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가 그분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된것은자신이아버지가되어사랑하는아이들을갖게 되면서였고, 아버지의 의미와 아버지날이 무슨 날인지를 비로 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그 글의 요지였다. 나는그의얘기를읽으면서내내아버지가없는흑인아이들 을 생각했다. 그리고 흑인 교회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또한 새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있는흑인커뮤니티에서그들을지원해야하는큰이 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지 없는 아이들을 아버지처럼 돌 봐주고 가이드해주는 사람들, 그런 갸륵한 뜻을 갖고 살아가 는사람들이항상우리의주위에있다는사실을우리는기억 할 필요가 있다고 또한 생각했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 자랐던 사람은 모를 거다. 아버지가 없는 흑인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동경이요 희망일 거다. 그런데 많 은흑인청소년들에게그런아버지가없다.물론내얘기의포 인트는 아버지가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것 조차갖고있지 못한소수의어려운사람들이많다는것, 우 리는 그런 사람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도 바로 이것이다. 수많은 사 람들이 알게 모르게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직도 고통스럽게 병상에 누워있다. 그들은 대부분 병균에 약하거나 평소에 지 병을 앓고 있었거나, 선천적 면역결핍증 환자였거나 백신 면 역에 취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그들은 건강한 보 통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팬 데믹은 우리에게 그들의 안전이 없이는 우리도 안전하지 않다 는걸가르쳐주었다.우리는알게모르게서로연결되어살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안고잊혀져살고있는소수의사람들을기억할때,내 가가진작은것이얼마나소중하고,귀한것인가알게될것 이다. 건강한 자식들을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행 복한 사람인가? 엊그제 청천벽력, 44살의 아들을 세상에서 떠 나보내고 간장이 타는 슬픔 속에 떨어진 친구부부를 대하면서 자식들이 모두 건강히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알았다.

펜데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마스크를 벗고, 일상이 정 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노마스크는 다수가 살 기위한해법일뿐,그가운데바이러스에취약한소수의사람 들은더욱고통스럽게살아갈것이고,또다시잊혀진채고립 되어살아갈것이뻔하다. 세상은소수가늘다수를위한소 모적존재가되는경우가많지않는가. 나만안전하고잘살 면 된다? 팬데믹 세상은 모두가 안전해야 나도 안전하다는 걸 가르쳐 준다. 내가가진작은것을사랑하고귀하게여기는삶,더불어소 외된채힘들게살아가는소수이웃에대한인간적공감그리 고포용하는삶,그런게진짜로사는게아닐까. 사람다운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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