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두어 달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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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두 달의 긴 시간을 보냈다. 지난 9월초 중국 상해에서 개최된 뷰티쇼에 참가하기 위해 떠났다가, 제주 한상대회, 그리고 조카의 결혼식까지 아예 참석하고 11월초에 귀가했던 것이다.

서울의 아침, 지하철역 앞 노점상에서 어묵이나 토스트, 그리고 커피 한 잔, 합해서 1000원이니 $1.00도 안 된다. 자전거로 공원을 돌아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상쾌한 아침의 시작이다. 아침뉴스를 듣는다. 시원스럽다. 영어뉴스처럼 알아듣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아나운서의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여기저기 만날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지하철을 탄다. 승객들 모두가 차분하다. 대부분 스마트폰 플레이에만 열중한다. 아직은 경로석을 차지하기가 좀 거시기 하지만,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만남의 장소는 대부분 식당이나 커피숍이다. 촌놈인 나에게는 음식 값이 싼 식당일수록 맛있다. 대부분 맥도날드보다 싸다. 커피 값은 미국보다 비싼 편이다. 스타벅스를 비롯하여 국내외 체인 커피점들이 수없이 많다. 수다를 좋아하는 여성들에게는 천국이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했다. 그런데도 다들 바쁘게 산다. 1주일 전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만나기가 쉽지 않다. 동네 문화회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 스포츠댄스, 서예, 고전무용, 창, 악기…등 그리고 영화, 연극, 음악회를 즐기거나 동창회, 동호회에 참석하고 지인들의 관혼상제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고…자기하기에 따라 바쁜 일정이 줄지어 있다.

주말에는 $30-$40이면 1일 코스로 지방 관광버스여행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새벽 6:30쯤 관광버스를 탄다. 중간 중간 다양한 볼거리들이 쌓이고 쌓였다. 무릉도원 하루를 친구들과, 설악산은 뒤늦게 합류한 미국의 우리식구들 8명이 1박2일로 즐겼다. 고국의 산천은 정말 아름답다. 지방마다 경쟁적으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예쁘게 꾸며놓았다. 멋지고 편리하다. 곳곳의 특유한 음식들이 여행 맛을 배가시킨다.
이번에는 치과, 피부과 치료도 받았다. 사전 약속 없이도 진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1-2개월 전 약속을 해야 되는 미국과 비교하니 편리할 뿐만 아니라 비용도 너무 싸다. 65세 이상자는 무료 독감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아파트 경비원이 일일이 통보해주고 확인을 받기도 했다. 국민건강을 일일이 챙기는 사회다.

살만한 나라를 만들었다. 서민들의 생활이 이 정도면 미국사회 못지않다. 다만 사람들끼리 좀 더 쾌적하고 기분 좋은 일상생활의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처음 온 우리 사위에게 첫 인상을 물었더니, “They looks guarded. 한국인들은 타인을 경계하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웃으며 “하이”라는 인사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미국아이들에게는 한국인들의 근엄한 얼굴표정이 어색해 보였던 것이다. 마주치는 사람에게 웃어주고, 작은 호의에도 반드시 “Thank you”하고, “아름다워요” “원더풀” “우아해요” “잘 했어요” 기분 좋은 말들을 순간순간 끊임없이 쏟아내는 선진국 사람들의 문화는 삶의 공간을 쾌적하게 만든다.

미국사회의 경우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분야에서 프로가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한국에는 선진국 못지않은 멋진 시설을 갖춘 관광지 호텔들이 많지만 서비스가 수준 미달이었다. 조그마한 모텔도 명찰과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24시간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미국의 뷰티산업분야에서도 매년 일정 교육시간을 채워야 미용사자격증이 유지된다. 미국이 세계의 미를 선도하는 이유다.

한국은 분명 살만한 나라를 만들었다. 이제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차례다. 물질과 정신이 함께 갈 때 가능하다. 사회 곳곳에 위대한 시민정신과 프로의식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다수가 될 때 이룰 수 있다. 위대한 시민만이 위대한 나라를 만든다. 그렇게 될 거라 나는 믿는다. 그런 나라에서 나머지 인생을 재미있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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