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친구의 미국여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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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몸담았던 초등학교 친구 K교수가 지난달 은퇴했다. 미국이나 한번 왔다 가라고 했더니, 아내와 함께 즉시 달려왔다. 내가 사는 세인트루이스에서 5시간 거리 시카고공항에서 K부부를 픽업했다. 시카고에는 초등학교시절 또 한 친구인 M이 살고 있다. K와 M은 60여년 만에 감동의 재회를 가졌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되어 서로를 얼싸 안았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모습이 보인다면서 감격해 했다.

나는 K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미국사회를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가 어떤 편견이 있다면 벗게 해주고도 싶었다. 그가 학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같은 해외동포들의 일상의 삶도 들여다보고 동포사회와의 교감의 폭도 키웠으면 좋겠는 생각도 곁들였다. 여행이란 편견에 벗어나는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미국여행이 시작되었다. 내가 사는 세인트루이스는 미국의 평균도시다. 세인트루이스에 대한 이해가 곧 진짜배기 미국사회를 체험하는 기회일 수 있다. 우리 집에 짐을 풀고, 나의 사는 모습부터 보여주었다. 주변의 이런저런 볼거리는 물론 출근길과 나의 일터, 동포들의 사업장까지 돌아보았다. 내가 자주 만나고 살아왔던 나의 친구들도 만나 함께 식사하면서 우리들의 대화를 K가 엿듣게 했다. 대화의 색깔이 달랐을 거다. 특히 우리의 미국이민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결혼 이민자, 위대한 누이들과 만남은 특별했을 거라 믿는다.

노루와 다람쥐들이 뛰어노는 동네 공원, 새벽 숲속 걷기, 2-4시간 인근 천연동굴, 도시 하나보다 더 큰 호수도 만끽했다. 끝없는 지평선, 옥수수와 콩밭이 닫는 하늘, 그 밑으로 지는 석양을 K부부는 감탄했다.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시골동네의 모습도 멀리서 즐겼다.

물론 주요 볼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나이아가라폭포 구경을 위해 집을 떠났다. 디트로이트를 거쳐야 했으므로, 그곳 친구 집에 하룻밤을 묵을 작정으로 8시간의 드라이브를 강행했다. K에게는 한꺼번에 그렇게 긴 드라이브는 처음이리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지를 횡단하며 광활한 미국을 체험했을 것이다. 늦은 저녁 디트로이트 친구 집에 도착했다. 친구 부인이 정성껏 준비한 삼계탕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의 귀한 일부다. K부부는 재미동포들 끼리 따뜻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또 한 차례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나이아가라폭포를 즐긴 후, 우리는 뉴욕을 향해 또 다시 8시간을 드라이브했다. 맨해튼 빌딩 숲속에서 살고 있는 내 딸 부부와의 만남도 가졌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도 둘러보았다. 그리고 1주일 만에 모처럼 커피숍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K부부는 오늘 하루는 여행사를 이용해 뉴욕시내를 구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은 워싱턴이다. 물론 워싱턴에서도 친구들 집을 들릴 예정이다.

친구와의 여행 중 아주 아주 귀중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대화였다. 길고 긴 지루한 드라이브시간은 대화로 즐겼다. 초등학교 이래로 못 나누었던 얘기들이 한꺼번에 꽃을 피웠다. 우리들의 지난 삶의 흔적, 그리고 서로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알 수 있는 귀한 순간이었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의 모습, 생각의 차이도 서로가 감지할 수 있었다. 도시의 구경거리만 찾아다니기에 바빴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K부부의 기억 속에 사람살이의 다른 모습이 깊이 새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한다면 나의 삶을 좀 더 풍부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가 사는 문화의 기존 인식의 틀을 허무는 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보름동안 K에게 볼거리보다 사람 사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려 애썼다. 귀한 시간과 경비를 들여 미국여행을 맘먹은 K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구경하는 곳이라기보다 체험하는 곳이다. 세계 최강 로마의 자연과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K부부가 이런 만남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길을 함께 가는 파트너로서 미국사회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정을 더욱 깊게 쌓아가는 새로운 긍정의 눈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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