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끝자락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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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어부가아침일찍바다에나가생선을잡아온후,오후에는그늘 밑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한 사업가가 지나가다 이를 보고 말을 걸었다.

“지금 당신은 뭐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내 삶을 즐기고 있네.”
“왜 밖에 나가 생선을 더 잡지 않는가?”
“생선을 더 잡아 뭐하나?”
“돈을 더 벌면 좋지 않나?”
“돈을 더 벌면 뭐하나?”
“그러면 나중에 네 인생을 즐길 수 있지 않나?“ “당신은내가지금뭐하고있는줄아는가?인생을 즐기는 중 인데 왜 나중까지 미루어야 하나?”

칠순을 훨씬 넘겨서야 겨우 이 얘기의 뜻이 뭔지 알게 되었으니 난 어리석은사람이다. 돈이 많다고 즐길 거리가 더 많은 것도아니다. 늙어 보니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젊어서 좀 더 즐기며 살 껄 후회가 앞서는 이유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렇게 사는 거다. 금년 고국방문은 행복 사건 만들 기에 초점을 두고, 미리 스케줄을 잡았다. 수십년 동안 마음 속으로만 담아 두고 그리워했던 혈육과 친구들을 만나 보기로 한 것이다. 생전에 꼭 한번은 얼굴을 보아야 할 사람들이다.

첫번째만남: 어렸을 적 나이가 같아 친구 처럼 지냈던 외사촌 그리고 삼춘 (나의 모친 막내동생)과의  만남이 60여년 만에 이루어졌다. 이미 약속을 잡았는데 갑자기 나의 모친 바로 아래 동생이신 삼춘(94세)의 별세 소식을 접했고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어린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들 남아 있었다. 핏줄의 땡김도 여전했다. 우린 하룻밤을 함께 지내면서 옛날 얘기에 흠뻑 젖었고, 깊은 정을 나누었다. 맑은 샘물처럼 한없이 마시고 싶었다. 행복했다. 이제라도 자주 만나고 살자고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두번째 만남: 50여년 만에 이루어진 두 사람의 대학 동창들이었다. 그 중 한 친구가 최근 “소설 예수”(7권)를 출간 했는데, 대학 교수로 살았던 또 한 친구가 출판기념식장에 나타났다.두 친구는 모두 나와는 특별한 기억이 있었던 사이다. 그런데 왜 그동안 그렇게 지냈는지, 참으로 무심한 삶을 살았다. 기념식 훗날 나는 두 친구를 각각 따로 만나 지나온 삶의 얘 기를 오래 나누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경남 진주에 묻혀 살았던 친구는 진주까지 찾아가 만났다. 모두가 치열하게 그리고 좋은 삶을 살았다. 나는 그들의 삶을 기록 해두기로했고, 우리는 말년이나 마자 주 만남을 갖기로 했다. 정말 행복했다.

세번째 만남: 중학교 동창생이었다. 그는 출판사를 경영 크게 성공했다. 서울 인근에 30여만평 수목원도 조성 했다고 한다. 그 친구 부부가 젊어서 미국으로 나를 찾아 준지 30여년이 넘은 만남이었다. 나는 중학교때 같은 반이 었던 두명의 친구와 함께 그의 출판사를 찾아 갔는데, 한 친구는 중학교 졸업후 첫 만남이고, 또 한 친구는 대학졸업 후 첫만남이라는 것이었다. 서울 하늘 아래서 왜들 그렇게 바쁘게만 살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한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혈육과 친구가 진짜배기 행복의 보물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이 곧 행복이고 즐거움이었다. 그런걸 나는 엉뚱한곳에서 찾으려했다. 바로 내옆 에 있었던 것을…

즐김이란 뭔가? 긴 여운을 남기는 행복감이다. 돈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 행복은 행복을 낳는다. 오늘 행복 사건을 만 들어 즐길 때 내일의 행복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배틀에서 비단옷 감을 짜듯 그런 행복을 하나씩일상에서 짜 갈때 뒤돌아 보면 비단 옷 감같은 행복으로 짜인 인생이 펼쳐지는 거고, 그게 잘 산거다. 젊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귀가, 곧 바로 추수감사절을 맞았다. 멀리서 찾아와 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다행히도 “끝이 좋으면, 모든 것 이 좋다”는 말을 기억해 냈다. 이제부터라도 감추어진 그러나 까맣게 잊 고지냈던보물을찾아나서자. 그들에게그간못나누었던우정과사랑 을 모두 쏟아 붙고 떠나자, 그렇게 인생 끝자락이라도 비단옷감을 짜보 자, 때늦은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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