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계에 대한 혐오 범죄를 보면서…

0

옛날부터 역병이 발생하면 민심이 흉흉했습니다, 특히 나쁜 놈들이 희생양을 찾아 나섰고요. 14세기 흑사병이 휩쓸었을 때는, 수많은 유태인들이 희생양이 되었었습니다. 오늘날 같은 대명천지에 팬다믹 혼란을 기화로 갑자기 아시안계가 미국사회의 희생양으로 떠올랐네요. 불을 당긴 사람이 누굽니까? 다름 아닌 전직 대통령이었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죠. 그가 지각없이 해댔던 수많은 말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Chinese virus” “Kung Flue”…이런 말들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암암리 쌓여왔던 아시안계에 대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반감에다 불을 지른 거지요.

“Kung Flue” “우환 바이러스” 같은 게 실제라 하더라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요. 정치란 뭔가요? 더 높고 큰 차원에서 국민 통합을 지향해야 하는 거지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런 걸 가지고 장난치며 국민을 이간질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정치라는 샘물에 독약을 뿌리는 자들입니다. 트럼프 이전에도 그런 자가 있었지요. 1960년대 알라바마 주지사 조지 월리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독한 인종주의자였지요. 흑백 분리주의를 강행하려다 결국 케네디 대통령의 강력한 반대 조처로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그런 자들이 악의 씨를 여기저기 뿌리고, 우물에 독약을 타서 미국을 이렇게까지 병들게 한 것입니다.

이런 인종혐오사태를 대처하는 데 있어서 정치지도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들이 많습니다. 1924년 일본 관동대지진 시 “조센징 죽여라”며 조선사람들을 죽창으로 대량 학살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의 나쁜 놈들도 좋아했다지요. 그러자 한국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놈들을 죽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일본은 즉시 재일 한인 학살을 금지시켰다고 하지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반유태주의로 엄청난 유태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공산당은 달랐지요. 반유태주의를 배척했던 것입니다. 나치스나 볼셰비키 모두 나쁜 놈들이기는 하지만, 볼셰비키 핵심 멤버들은 나치처럼 하지는 않았던 거죠. 요즈음도 그런 나쁜 놈들이 세계 도처에 있어요. 중국을 보십시오. 아닌 척하면서 슬금슬금 소수민족들 옭아매며 박해하고 있습니다. 위구르 사람들을 중국말 못한다고 업신여기고, 너희 말 쓰지 말고 한자 써야 출세한다며 중국화를 강요하고 있어요. 투옥, 강제 이주, 강간…등 엄청난 반인권적인 일들도 서슴없이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걸 암암리에 조장하고 간과하는 지도자들이야말로 진짜 나쁜 놈들이죠.

아시안계 인권단체 하나인 <STOP AAPI HATE>에 의하면, 팬더믹 이후 아시안계에 대한 인종혐오 사건 3천여건이 접수되었고, 그 가운데 240여건이 물리적 공격이었다고 합니다. 84세의 태국계 노인은 공격을 당해 길거리에 넘어져 사망하기까지 했다지요. 이런 일들은 나쁜 놈들의 양심에 호소하거나, 억울함을 외쳐보았자 소용없는 일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도자들의 한 마디가 중요한 거죠. “이런 짓은 ‘Un-American’ 행위다. 힘없는 소수민족에 대해 위해를 가하는 짓은 절대로 용납 못한다.”는 강력한 경고면 됩니다. 다행스럽게 인권 및 인종 문제에 투철한 바이든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저는 바이든의 정치적 도덕성을 믿습니다.

물론 저처럼 힘없는 노인의 경우 여전히 불안하지요. 그런데 그 불안은 나 자신 속에도 내재해 있지 않나 반성도 해본답니다. 미국시민으로 사는 나는 누구이며, 나는 과연 시민 가족의 일원으로서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다시 말하면, 나는 진짜배기 미국시민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책임은 방기하고, 나의 권리만 주장하는 몰염치한 외국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인종주의자들의 마음속에 꽈리를 틀고 있을 것 같은 우리에 대한 불편한 진실도 바라보자는 거죠. 미국이 ‘우리나라’이고 미국인들이 ‘우리가족’이라는 인식과 그 일원으로서 책임감 말입니다.

물론 드러나지 않는 차별도 있고, 그런 게 실제로 없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걸 감안 하더라도 포용성과 관대함에 있어서만은 미국은 참으로 놀라운 사회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도 그런 게 있는가? 우리도 흑인 며느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무리 개개인은 잘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룹으로서 이 사회를 위해서 뭘 하고 있는가? 정말 허심탄회하게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