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을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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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열흘 여정으로 동유럽 국가들을 돌아보았다. 공산권 사회주의를 벗어난 그들의 변모는 색달라 보였다. 모차르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부터 음악의 수도 비엔나까지, 체코의 프라하 성, 슬로바키아의 아름다운 대지,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헝가리 부다페스트, 어디든 고색창연한 웅장한 건축물,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 수채화처럼 수려한 산과 호수가 둘러싸인 시골마을들…모든 도시들 자체가 엄청난 역사박물관이요 관광자원이었다.

이들 국가들은 NATO와 EU 가입으로 이제는 미국과 서유럽 진영의 러시아를 향한 완충지대다. 민주/자본주의 사회로서 경제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미국의 맥도날드,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든 체인들이 수 백년 묵은 건축물들 사이에 함께 자리 잡고 있다. EU란 무엇인가? 천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서로 죽이고 빼앗고 빼앗겼던 불구대천의 원수들이 과거를 뒤로 하고 하나의 경제권을 만들어 낸 기적이다. 그것은 성숙된 인간들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이마누엘 칸트는 “개화(enlightenment)란 인간이 스스로 갇혀 있던 미성숙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개화된 인간들의 엄청난 발걸음을 보았다. 개화의 기적이 젖줄이 되어 동유럽 국가들에게 까지 이어져 또 다른 번영을 약속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수백년동안 쌓아왔던 엄청난 문화/예술이 또 다시 새로운 인류문명의 기적을 만들어 낼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여행 중 가장 감명을 받았던 헝가리를 예로 들어 본다. 사실 헝가리에 대한 나의 무지를 이번 여행에서 깨닫고 부끄러웠다. 대단한 나라였다. 부다페스트의 어마어마한 건축물들을 보고 뛰는 가슴을 억제할 수 없었다. 헝가리 민족의 저력의 상징이다. 대한민국 크기만한 나라, 인구 1천만명, 이 작은 나라가 화학, 물리학, 의학, 문학, 경제, 평화 분야에서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스티브잡스가 인정한 IT기술의 최강국, 발명과 발견의 나라, 인류 최초의 발명품으로 우리가 일상용품으로 혹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만 예로 들어도 비타민C, CT/MRI 장비 기본원리, 볼펜, 성냥, 컴퓨터, 쇼프트콘택트렌즈. 컬러텔레비젼, 터보프롤엔진 설계, 변압기, 핵 연쇄반응, 헬리콥터 프로펠러, 망원경, 소다수, EXCELL, 축음기 녹음, 냉장고, 전화교환기, 자동차 기어박스, 교류전기 기관차, 폭스바겐 딱정벌레 디자인, 코다이식 음악교육법, 빛 통과 콘크리트, 3D, 홀로그래피, 퓰리처상….무궁무진하다. 과연 삼성전자가 유럽의 생산기지로 헝가리를 선택할만했다.

발명품에 그치지 않는다. 피아노의 거장 F.리스트, 현대 음악의 아버지 B.바르토크, 음악 교수법을 창안한 Z.코다이, 세계적인 바이올린이스트 J.후바이, C.플리시, 패러마운트 영화사를 창립한 A.주커, 폭스 영화사를 일으킨 W.플리드, 그리고 문학문야에서도 세계적인 시인들이 많다. 1200석의 부타페스트 국립오페라하우스 등 세계적인 수준의 대형 공연장이 30여개나 된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도 공연티켓구입비를 아끼지 않는 문화적 수요가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위의 궁전’으로 불리는 국회의사당 건물은 국사를 논하는 곳으로서의 위용과 장엄함을 드러낸다. 1880년경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도나우강변에 1904년 완공했다. 유럽 두 번째로 큰 의회 건물로 7백여개의 방과 242개의 조각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굳이 이렇게 자세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헝가리뿐만 아니라, 체코, 폴란드,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도 이에 못지않은 오랜 역사적 전통과 문화/예술로 무장된 엄청난 나라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5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가 얼마나 겸손해져야 하는 지를 이들 국가들을 여행해 보면 느끼게 된다. 물론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낄 정도로 성공했음을 자부해도 좋다. 하지만 동유럽 국가들을 보면서 난 문화/예술의 세계성과 국부(國富)를 연결시켜보니,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절감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글로벌코리아는 우리 문화의 세계화와 맞물려 있다. 경제와 문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경제의 크기만큼 문화의 크기도 걸맞아야 함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문화적 가치와 환경이 사회와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작동한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가 당장 청산하고자 하는 정치/사회적 미성숙, 적폐 같은 이슈도 결국 문화로서 극복할 수밖에 없다. 유럽시민들은 준법의 자율화가 놀라울 정도도 철저하다는 관광가이드의 얘기를 들으면서, 문화민족으로서 자부하는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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