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머리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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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 네 욕심만 채우려고 하지 마 / 저렴하잖아 완전 싼 티 나잖아 / 교양머리 없는 거 다 까발려지잖아 / 뭐든지 젤 먼저 지 것만 챙겨가기 바쁘면서 / 입으론 예수 석가 공자 저리 가라 온갖 성인군자 코스프레 / 내가 알을 아주 많이 낳아서 하는 말이지만 /

어쨌든 잘 들어 정말 질알도 풍년이다” 가수 졸라리안의 <질알도 풍년이다>라는 노래 가사다.

지난주 우리 동네 한 유명 사립 고등학교 자선 음악회에 참석하면서 이 노래가 생각났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부자들로 알려진 전.현 학부모들이었다. 좌석은 등급별로 먼저 온 사람이 좋은 자리를 우선 차지하게 되어 있었다. 괜찮은 자리였다. 내가 앉으려 했더니, 귀티가 나는 한 백인 부인이 연 3좌석 위에 자기 자켓을 걸쳐 놓더니 어디론가 나가는 것이었다. 자기 일행 좌석을 미리 잡아 놓은 것이다. 눈에 거슬렸다. 한참 후에 그 여성이 돌아오더니, 그 옷을 다시 집어 들고 더 나아 보이는 좌석으로 옮겨 가는 것이었다. “교양머리 없는…” 나 혼자 뱉은 소리였다.

멋지게 차려입고 교양 있게 보이는 여성이 쌍스런 언행을 보일 때, 특히 실망스러움이 크다. 물론 여성만이 아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다만 여성이 미적 감각과 표현능력 면에서 남성보다 뛰어나아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교양미란 고급 브랜드 의상이나 액서사리, 음악회 같은 것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교양이란 함축적 의미로 말한다면 인격, 정신, 도덕 및 지혜가 밖으로 드러난 한 인간의 내면의 아름다움이다. 특히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은 에티켓으로서의 교양미라고 할 수 있다.

한 때는 그랬었다. 음악과 예술을 얘기하고, <현대문학> 같은 간행물을 손에 들고 다니며 자신이 교양 있는 사람이란 걸 은근히 드러내곤 했었다. 먹물이 곧 교양인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은 그게 좀 달라졌다. 먹물들이 흔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돈이 곧 교양이 되었다. 고급 인테리어, 멋진 서재가 교양이다. 멋진 서재에서 폼을 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교양미를 부각시킨다. 그런 걸 주문제작해 주는 비즈니스가 성행하는 이유다. 네임 브랜드 의상과 고급 몸치장도 그렇다. 내면보다 겉으로 드러난 패션이 트렌드인 시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특히 돈 치장이 액서사리로서의 교양의 수단이 된 것이다. 문제는 돈으로 처바른 교양미, 돈 자루만 찬 벌거숭이다.

지식이 많으면 또 교양인인가? 고등학교 때까지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이면 훌륭하다. 지식보다 상식적 배려와 인간적 소양이 앞선다. 지식과 배움이 많지 않았던 우리의 부모세대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상식으로 판단하고, 상식적인 삶을 살았다. 배웠다는 우리세대가 그분들보다 교양 면에서 격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엘리트 지식인으로서 교양미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교양은 단순 지식의 집적, 잡학과 다식, 박학을 넘어 기성의 진리체계를 동요시키는 힘,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고 심문하는 능력, 기존의 진리주장 어느 것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 현상의 배후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는 힘, 방향감각을 흔들고 혼란시켜 새로운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게 하는 능력, 틀린 것은 바로잡으려는 오류 수정의 능력이다.”(도정일 교수의 주장). 그런 차원에서 나의 선배 K교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철학자이면서도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학, 음악, 건축, 그리고 과학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깊은 지식을 갖추었다. 부러움이다. 하지만 그건 학자로서의 그의 기초적 지식에 불과하다. 그의 위대함은 기존의 사상과 주장들에 함몰되지 않고 오늘의 눈으로 판단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K교수야 말로 지식인으로서 참다운 교양인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한국인에게 가장 큰 욕은 “의리 없는 놈”이고, 미국인에게는 “거짓말쟁이”다. 일본인에게는 뭘까? “교양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세계인들이 일본인들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부하는 우리가 일본인 수준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우리 업계도 “교양머리 없는…” 갑질, <질알이 풍년>이 횡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도 한번쯤 업계차원의 교양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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