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이렇게 또 한해를 보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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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 듯 또 한해가 지나 가려한다. 매년 맞는 연말이면 모두가 윈 윈(win win) 하였기를 기대해 보지만 요즘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소식에는 많은 회사들이나 소매점 스토어가 힘들어 한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폐업하는 회사나 소매점도 있어 마음이 우울하기도 하다. 소매점들이 활발해야 회사들도 덩달아 활기가 넘쳐 날 텐데 요즘 소매점마다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다. 왜 그러는지 알아 봐 달라며 여러 곳에서 전화를 해 오지만 이유야 돈이 아니겠는가?

점점 각박해지는 정치. 사회와 혼란 속으로 빠져 드는 글로벌 경제, 어느 한 가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으니 힘들 수밖에…연말이 되어 가니 세일즈맨들이 회사를 대신하여 ‘연말 인사 차 왔어요’라며 스토어 문을 밀고 들어오지만 빈손으로 돌려 보내야하는 소매점 주인의 마음도 짠하다. 우리 힘내어 견뎌 보자며 다독여 돌려보내 놓고 씁쓸하게 돌아가는 뒷모습에 그 마음 이해된다며 자위해 본다.

최근 몇 년 동안, 뷰티 타임즈도 예외 없이 참으로 힘들게 버티고 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고비가 왔던 것 같다. 자의의 의한 고비였으면 손을 들고 정리를 했겠지만 타의에 의한 고비라 생각하니 더 오기가 나서 버텨보자고 다짐을 했다. 어느 날 두툼한 누런 봉투 하나가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대충 훑어 본 후 신경 쓰지 않고 버렸다. 그런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큰 봉투와 이번에는 소장까지 배달되었다. 경찰(SHERRIFF)이 직접 들고 왔다.

누른 봉투 속 목록에는 200여 헤어회사와 언론사들, 뷰티협회들도 대상이 되어 있었다. 미시간에서 뷰티서플라이를 하는 비 한인이 원고로 나섰다. 누런 봉투 안에는 원고 측이 주장하는 내용물이 80여 페이지나 되었다. 이는 대부분 그 동안 언론 매체를 통해서 알려진 내용들이었지만 매끄러운 번역은 아니었다. 그걸 가지고 한국인 회사들이 담합을 했다고 주장을 했다. 법원을 통해서 소장이 접수되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뷰티업계를 위해 열심히 일 해 왔다고 자부했는데 황당하기만 하였다.

한글과 영문 번역이 다소 서툴기는 했지만 이런 것을 지적해 줄 수 있는 것은 필시 한국인 누군가가 돕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군가는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 짓이지만 당장은 아니어도 천 벌을 받을 일이로다. 어렴풋이 누구의 짓인지 짐작을 하면서도 물증을 잡지 못하여 고스란히 당하는 수밖에…그러는 동안 어느 한곳 구심점 없이 중구난방으로 수많은 억척들만 난무하는 가운데 시간은 흐르고 법정 출두 명령 날이 다가 오면서 외면하지 못하는 현실로 접어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많은 회사들이 피고 밖으로 제외되고, 그야 말로 명품 회사들만 남았다. 언론사는 뷰티 타임즈만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고가 원하는 금액을 내겠다는 회사가 당근 아무도 없었고, 각자 기각을 끌어내기 위하여 변호인단들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원고측이 주장하는 금액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해서 다행이었지만 뷰티 타임즈가 소송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광고주 회사들이 술렁이고 몇 회사에서는 공문까지 보내 왔다. “소송을 당한 잡지사에는 더 이상 광고를 싣지 않겠다”라는 내용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면 더 협력하여 서로 도와 해결 방안을 세워 돌파구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힘들고 어렵게 되었다. 당장 프린트비와 메일링비에 제동이 걸렸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내어 1년여를 버텨보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를 지켜보는 직원들은 호소문을 내서 비용을 좀 만들어 보자고도 했다.

억울함과 자존심이 땅바닥을 치고 있을 때 어느 회사가 숨통을 튀어주었다. ‘명품 잡지사를 아무나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명품은 긴 세월 속에 묵묵히 걸어가는 장인 정신과 피와 땀이 어우러진 경륜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다른 잡지사는 다 제외되었어도 뷰티 타임즈는 끝까지 남아서 싸워야하는 영광?을 얻지 않았냐’며 위로와 함께 광고 페이지를 늘려 주었다. 미국에 와서 살아온 반평생 동안, 남들처럼 모아 놓은 재물도 없고, 가지고 있던 것 다 없애 버리고 뷰티업계에 얼부러져 바보처럼 살고 있는 K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투정뿐이었는데,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또 다른 창문을 열어 주시는 신의 축복이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이 점, 뷰티 타임즈는 너무나 감사한다.

남은 해당 사업체들과 이를 어떻게 대처해 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각자 해결 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해당 회사는 회사대로 뷰티타임즈는 우리대로 돌파구를 찾아서 무슨 방법을 동원하여서라도 기각을 끌어내야만 했다. 그러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허비되고 힘들겠지만 오직 “기각”을 위해 법정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각오였다. 뷰티 타임즈가 기각을 끌어 내야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원고에게 빌미를 잡힌다면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우를 만들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야 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사건이 줄을 이어 일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원고인 측이 미시간 주에 거주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인트루이스와 미시간, 양측에다 변호인단을 만들어야 했다. 원고인 측이 주장하는 것과 피고인 측이 원하는 방향이 서로 다르니 시간은 자꾸 흐르고 덕을 보는 쪽은 변호인단들이다. 거의 1년여 동안 밀고 당기는 가운데 “기각” 이라는 답을 받아 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우리는 물론 모든 직원들이 기진맥진하였고, 재정에도 참담한 상황이 빚어졌다. 기각을 만들어 냈으니 양측 변호인단에게 감사할 일이긴 한데…참으로 힘든 과정이었다.

생사의 기로에 서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회사가 파산 선고를 내고 소매점이 문을 닫아야 하는 아픔은 남의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일궈 온 일터가 없어지는 것은 참담함 그 자체이다. 우리, 한보씩 뒤로 물러서서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켜보자. 욕심도 조금씩 내려놓고, 힘내어 참고 견뎌 보자. 어차피 지나 갈 것은 다 지나 갈 것으로 믿으면서…여러분,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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