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여왕이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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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번째 주일은 미국의 어머니날이다. 나는 어제 아이들이 보내 준 예쁘고 향기 나는 꽃다발을 받아서 퀴퀴한 사무실의 향기를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렇게 매년 아이들이 보내 주는 꽃향기에 취하고 있는데 내 어머니에게는 보낼 수가 없어서 속이 많이 상하다. 천상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자식이 안겨드리는 꽃향기만 하겠는가?

내 어머니는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셨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어머니는 늘 외로우셨을 것이다. 반백이 되기도 전에 혼자 되셔서 백수 가까이 사셨으니 긴긴 세월 혼자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자식들이 여럿이면 뭐하겠나. 그들도 나름대로 생활에 쫓기면서 사느라 어머니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을 테고, 모두 도시의 꿈을 찾아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자식들이 얼마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자주 찾아 드렸겠나. 나부터 그러했으니까.

결혼 40년 생활에 18년 되던 해에 딱! 한번 딸집이라고 미국으로 오셨는데도 우리는 매일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만 집에 남겨 두고 아이들은 학교로 우리는 일터로 미친년 널뛰듯이 동분서주하게 사는 것을 며칠 동안 물끄러미 지켜보시더니 한 달 만에 “재미없는 미국은 못 살겠다” 하시며 한국으로 돌아가시겠다고 해서 그래도 100일은 계셔 달라고 애원했다. 매일 달력 장에 동그라미를 그으시더니 100일 되는 날 공항으로 떠나시면서 잘 참으셨던 눈물을 기어이 주르륵 보이시고 “잘 난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더니 그 말이 맞네” 하셨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께서 꽃을 좋아하시는 줄은 더더욱 몰랐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래도 제일 오랫동안 어머니 곁에서 산 막내 동생이 관 위에 아름드리 꽃을 올리면서 구슬피 울어서 알았다. 그런 어머니께 한 번도 내 손으로 꽃을 사 드린 적이 없었으니 나는 불효자 중의 불효자이다. 나의 시어머님께서도 거의 매일 일기를 쓰셨던 것을 세상을 떠나신 후에 유품에서 찾았다. 어느 페이지를 보면 아들의 이름을 21번이나 적으시고 ‘보고 싶다’를 수 없이 적으셨다. 이렇듯 어머니와 자식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질긴 끈이 있다.

나 자신이 그 위치에 서 보니 어른들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할 것 같다. 어머니의 자리는 어렵고도 힘든 자리이다. 어머니는 몸이 아파도, 마음이 슬퍼도, 마음 놓고 표현하지 못하고 끙끙 잠자리에서만 앓는다. 어머니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고, 어머니가 슬프면 온 가족이 슬퍼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표현하기를 참는다. 아이들이 밖에서 돌아와 ‘엄마’라 부르며 집안에 들어서면 눈앞에 아버지가 계시고 형제들이 있어도 어머니가 안 보이면 “아무도 없네”라고 하는 것도 아이들 눈에는 어머니만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런 어머니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머니날에 대한 유래를 찾아본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한창인 봄이면 왠지 우리의 마음은 그리운 어머니에게로 간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이 아무리 메말라간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봄이 지나기 전에 한 번쯤은 눈시울을 적셔 보내리라 생각한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혹은 멀리 고국이나 객지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불러도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 있다면 아마도 그 이름은 “어머니”라는 이름일 것이다.

영어 사전에는 어머니날 정의를 이렇게 표기하고 있다. “a day appointed for the special honoring of mothers by their children”. 어찌 하루의 짧은 날이 어머니의 날이라 마는 일 년 내내 어머니가 겪으시는 노고에 하루라도 공식적인 날을 정하여 모든 어머니를 쉬게 하자는 뜻에서 그러했으리라. 관습이나 유래를 보면 어머니날을 기념한 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신의 어머니인 ‘레아’의 노고를 위로하는 뜻에서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봄의 어느 날에 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기리는 축제로 어머니날의 유래는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이후 어머니날의 관습 유래는 16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부활절 사십일을 기준으로 4번째 일요일을 ‘영국의 어머니날’로 정하고 축제를 시작하였다. 그 당시의 영국에는 한 지역의 주인이 겨우 몇 사람뿐이었다. 한두 사람의 주인이 차지한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짓는 일꾼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노예들이었다. 그들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멀리 타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이다. 일 년 내내 일하고 공식적으로 쉬는 날은 오직 어머니날 하루였다. 그날은 멀리 사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든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케이크를 들고 축제에 참석하여 서로의 솜씨를 나누곤 했다. 그 빵을 ‘어머니의 케이크’라 이름을 붙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매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일요일’이라 하고 종교적으로 접목되었다. 모든 영신 신앙생활은 교회 안에서, 어머니의 마음처럼, 또는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라는 의미에서 ‘어머니의 교회’라 칭하고 종교 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미국에서의 시작은 1872년 보스턴에 사는 소설가인 줄리아 워드 하위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녀는 ‘어머니는 곧 평화의 상징’이라 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성장하는 과정 모두가 어머니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만들어진다. 어느 자식이 어머니의 자식 사랑의 십 분의 일이라도 부모를 공경할 수 있겠는가? 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평화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 표현했다. 그 후 1907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1911년부터는 대부분 주(STATE)에서 오월 2번째 일요일에 어머니날 행사를 했다. 어머니날 행사가 점점 전국적으로 퍼지자 1914년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이 오월 2번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식 공휴일로 공표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어머니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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