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구매 장터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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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덕분에 쌓였던 눈이 녹고, 꽁꽁 얼었던 시냇물이 녹아 졸졸졸 봄노래를 소리 내어 우리에게 들려준다. 덩달아 봄을 알리는 들풀과 꽃들도 봄의 향연으로 새움을 틔우고 싹을 피워 낸다. 하지만 아직은 마음 놓고 봄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고추보다 맵다는 매서운 꽃 샘 추위가 한 번 더 스쳐 지나가야 하니까. 사람들은 매서운 추위처럼 어려운 일이 생길 적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채면을 건다. ‘이 또한 모두 다 지나가리니’ ‘눈 질끈 감고 지나 보내자’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겠지?’ 등등.

우리도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돌려 맞기를 하면서 잘도 견디어 왔다. 큰 어려움을 많이 겪다보니 요즘은 소위 ‘간덩이가 부었는지 웬만큼 자잘한 사건에는 신경이 무디어져버린 늑대 여인이 되었다. 연초부터 최근까지 여기저기에 열린 컨벤션에 다녀왔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질문을 해서 당혹스럽다. “조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요?”였다. 조합이라니요, 어디서 무슨 조합을 만든대요? ’네, 모르세요. 장사가 어려우니 조합을 만들어서 공동구매를 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는데요? 직접 듣지는 못하였지만 조합이니 공동구매니 하는 단어가 낯설지만은 않다.

25년간 수 없이 들어 온 달콤한 단어였으니까. 지난 10년 넘게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우리 협회원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eyelash를 공동 구매 하고 있다. 회원들 스토어에 한 푼이라도 이문을 남겨주기 위해서 해 온 이 공동 구매는 희생과 봉사가 없으면 못 한다.

우선 <공지를 한다. 지금은 협회의 카카오톡 방이 있어서 편리하다. 회원 각각들로부터 각자가 원하는 아이템을 받아 모두 취합 한 후 번호대로 숫자를 합하여 오더를 한다. 오더 한 제품이 오면 좁은 사무실 공간에 펼쳐 놓고 오더 한 것과 빠진 아이템을 맞춰보고 전체 금액과 배송 비를 합쳐서 숫자만큼 나누어 낫 개의 금액을 정하고 나누기를 한다. 회원들이 각 각 오더 한 만큼 번호를 맞춰가며 나누어야 한다. 그런 후 각각에게 금액을 알리고 픽업하라고 공지를 하고 나눠 주면서 대금을 받아야하는데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에 물건을 찾아가면서 정확한 금액을 받으면 다행인데 늦은 사람, 바쁜 사람 모두 각자의 상황이 다른 사람들이라 한 날 한 시에 해결이 안 되면 인내심도 필요하다. 내가 자리를 늘 지키지 못하여 들쑥날쑥 찾으러 오는 회원들에게 대신 우리 직원들이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

이 작은 아이템 하나로도 공동구매가 힘 드는데 많은 종류의 아이템과 많은 물량을 공동구매 한다면 누구의 희생과 봉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듣기 좋고 말이 쉬워 공동구매라지만 공동 구매 장터가 이루어지려면 최우선적으로 이런 것들이 해결 되어야 한다. 보관 할 수 있는 “창고 스페이스 + 인력 + 돈”이다. 똑똑한 딜로 물량을 확보하였다 해도 각 스토어까지 배송이 될 때 까지 이것에 부여되는 비용은 어디에서 산출 할 것인가?

25년 전, 처음 신문으로 시작했던 뷰티업계의 산업지 ‘뷰티 타임즈‘ 8호에 실렸던 기사가 생각났다. 그때,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바뀐 BBSI라는 뷰티 쇼가 샌디에고 컨벤션 센타에서 열려 우리도 취재차 참가했을 때, 뷰티 산업에 이미 거장이 되신 분들이 모여 ’요즘 너무 힘들다. 무슨 대책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어‘라며 대책 회의를 하자며 컨벤션 장 한 켠에 모여 앉아 내 놓은 안건이 바로 ’공동구매‘였다. 아직 뷰티에 관하여 별 지식이 없었을 남편도 합세하여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25년이 지나는 동안 이 ’공동 구매나 조합‘이라는 사업적 안건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이유는 그 아무도 희생을 강요하거나 스스로 피 토할 희생을 내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구매 장터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또한 이미 참여자들이 가진 각자의 비즈니스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위해서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문제였고, 위에 제시한 문제가 쉽게 해결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동 구매 장터는 허울 좋은 빈 목소리로만 울려 펴졌던 것이 아닌가 한다. 소규모의 심플 아이템을 가지고 지역별로 삼빡하게는 해 볼 수 있겠지만 조합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이루어진다면 결국 또 하나의 도매상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많은 물량을 소화 할 수 있는 웨어 하우스가 있어야 할 것이고, 필요한 인력이 충분히 있어야 하고, 주고받아야 할 재무구조가 단단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것이 다 갖추어져도 누구 하나 왕창 피를 토해야 하는 봉사와 희생이 절실히 필요 할 것이다. 대단히 걱정되는 부분은 물량을 제조회사로부터 확보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불 결제가 가능해야 할 것이다. 자유 경쟁 시대에서는 돈이 말을 한다. 생산자들로부터 그 물량을 확보하려면 현 도매상들과 싸워서 이길 만큼 딜을 잘 해서 좋은 가격에 확보 할 수 있어야하고, 그 뒤에는 충분한 재무 구조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몸과 마음(욕심)을 내 놓고 그야말로 희생과 봉사로 공동구매 장터를 만들어 보겠다면 박수를 쳐 줄 일이나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경제가 워낙 어렵고 힘들어서 나온 호구지책으로 보이지만 25년 전에도 어렵다고 내 놓은 공동구매 장터가 성사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때 보다 더 많은 경쟁자들 속에서도 지금까지 잘 견디고 지켜 온 우리의 뷰티 산업이 아닌가. 요즘 다시 그런 이야기로 여기저기 삼삼오오 갈등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공동 구매의 후유증 하나를 예를 들어 본다. 어느 날, 고객 한사람이 케미컬 제품 한 가지를 써 보고 효과가 특별하다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이후 그 제품이 동이 났다. 제품을 만들어 내는 공장은 갑작스런 주문량에 감당을 못하고 주문이 밀려 있다고 전화조차 받지를 않았다. 이 때 팔아야 한다는 욕심은 어느 스토어든 마찬가지로 마음만 앞서서 안타까워 발만 동동동… 그 소문이 동부 어느 지역 까지 전달이 되었는지 협회장이 전화가 왔다. 자기네 협회에서 공동 구매 해 둔 것이 팔리지 않아서 쌓여 있는데 사 가란다. 그렇다. 액면 듣기에는 모두가 참여하고 다함께 투자하여 만들어 내는 공동이익이라는 꿀맛 같은 이야기 같지만 “공동구매 장터”가 그렇게 우리의 애타는 마음을 달래 주지는 못한다.

공동구매라는 말만 들어도 이제는 트라우마가 생긴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지역협회 차원으로, 중앙협회 차원으로, 이런저런 모임에서 많이 시도 해 보고 실패를 거듭 해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동구매 장터가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는 것은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일이 성사 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가면서 건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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