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렬 사장 “20여년 동안 오늘을 위해 일만했다. 아들이 꿈 이루어 가기를…” “승부는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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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韜光養晦)’를 항상 마음 속에 새기고 있어요. 저는 아직 ‘장 삿꾼’밖에 안됩니다. 무작정 열심히만 해왔어요. 이게 저의 한계라는 걸 알고 있지요.” 김응렬(61) 사장의 첫 마디였다.
‘도광양회’,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 이다.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린 다’다는 말로 바꾸어 볼 수 있다. 김사장은 IMF를 겪고, 이민의 길을 나 선 지 20여년, 밤낮 일만 했단다. 빚을 내 가게 하나를 구입해, 전국에 서 가장 경쟁이 심하다는 필라델피아지역에서 7개의 스토아를 운영하는 큰 상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꿈은 아직 멀리 있어 보인다. “다행이 아들 둘 중 하나가 제 사업을 이어갈 것 같습니다. 대기업의 꿈 이 대를 이어가면서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 은 아니지요.” 김 사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이미 사업에 뛰어 든 큰 아들 (Jay Kim,33)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추었다. 작은 아들(28)은 정형외과 의사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Sears 백화점 자리였다는 일곱번째 스토아를 둘러 보았다. 3만4천 평 방피트 크기에 90퍼센트 이상 뷰티제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저는 뷰 티서플라이 장사는 헤어, 그 가운데서도 휴먼헤어가 꽃이라고 생각합 니다. 잡화가 잘 된다고들 하지만, 오직 뷰티에만 집중해 왔어요.” 김 사장 얘기대로 정말 엄청난 헤어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손님들 이 질릴 정도로 진열하자”는 것이 김 사장의 사업방식의 핵심있단다. “이민 와서 다른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가게를 하나 구입할 기회가 생겼지요. 당시 20만불을 요구 했는데, 돈이 있어야죠. 한꺼번에 누가 그 큰 돈을 빌려 주겠습니까? 1만불, 2만불씩, 여기 저기 손을 벌렸어 요. 그래서 구입했던 가게가 J Beauty Supply였죠. 죽어라고 일했죠. 일요일도 문을 열면서, 아침에 판 돈으로 오후에 물건을 구입해서 돌렸 죠. 1년만에 빌린 돈 다 갚았고, 다행이 그게 성공의 씨앗이 되었던 겁 니다.” 힘들었던 지난 일을 회상한다. (현재 7개 스토어가 모두 2만 평 방피트가 넘고, 모두 주요 쇼핑센터에 자리잡고 있다)

“저는 정말 한눈 팔지 않고, 이 사업에만 몰두했어요. 남들은 주식이다 부동산이다 눈을 돌렸는데, 장사꾼이 쉽게 돈을 버는 것에 맛들이면 장 사 오래 못하죠. 하하” 김 사장은 오로지 한 곳만 팠다고 한다. “Hair Buzz”는 이제 필라지역의 쇼핑몰 렌드로드들에게는 큰 손으로 알려져있고, 어디든 입주를 환영한다고 한다.

“사실, 이제는 우리 뷰티서플라이를 백인 몰에서 끌어 들이려고 해요. 우리가 들어가면 흑인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유치할 수 있게 되거든요. 옛날에는 Sally’s Beauty를 우리가 두려워했지요. 이제는 반대 입장입 니다. 그들이 있는 곳이 우리에게 오히려 유리해요.” 김 사장은 뷰티서 플라이 사업에 관한한 이제는 어디든 자신감을 갖고 한번 도전해 볼만 하다고 덧붙인다. “좋은 장소라 생각되면 렌트비 생각하지 않고 얼마든 지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매는 무조건 장소와 싸이즈에 승 부가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김 사장은 장님에 대한 기대한 커 보인다. “여기까지가 저의 한계입니 다. 하지만 제 꿈을 아들이 이루어줄 거라 믿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비즈니스가 이제는 생업에서 벗어나 승부사들의 게임이 되어가고 있 지 않습니까? 비즈니스를 잘하시는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저는 미약 하지만, 대를 잇는 꿈, 그리고 페어 플레이를 통한 기업을 이루는 승부, 삶이란 그래서 재미있어 보이죠.“ 김사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아직 승 부의 끝은 멀리에 있어요. 이제부터 모든 것을 아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해 나가도록 할 작정”이라고 덧붙인다. 김 사장은 이민 전 보험회사에 근무했다. 직원 교육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달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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