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스마트폰 거부하는 러다이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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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처음으로 여행을 온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자동차로 동부지역을 돌았던 적이 있다.  내가 사는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동쪽으로 달리면 테네시 강을 지나고, 우렁찬 숲이 어우러져 솟구치는 아팔라치안 산맥이 굽이친다.  장엄한 숲의 바다가 장관을 이루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 소떼들이 한적하게 돌아다니는 들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거대한 자연의 수채화를 감상하노라면 온갖 망상은 사라지고, 대지 속에 꿈틀거리는 생명의 용트림이 내 가슴을 터치한다. 

광활한 미국땅이 그리는 대지의 장엄한 화폭을 어찌 놓칠 수 있단 말인가.  여행온 친구들에게는 감탄 그 자체였을 터다.  그리고 그 순간이 어쩌면 단 한번 마주치는 귀한 시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은 출발시부터 스마트폰에만 매달려 있었다.  창밖은 아예 처다보지도 않았다.  한국 친구들에게 안부 카톡을 나누면서 킥킥거리기도 하고, 한국 뉴스를 보며 욕짓거리까지 해대는 것이었다.  미국여행을 즐기러 온 친구들이 스마트폰만 즐기고 있었으니,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런 장면은 요즈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만큼 흔해졌다.  모두가 스마트폰 중독자들이니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뿐이다.  모처럼 친구들끼리 만나는 식사장소에서도, 가족간 식탁에서도,  대부분 스마트폰만을 처다보며, 남의 얘기는 건성으로 듣는둥 마는둥 한다.  화자에게는 대단한 무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너는 짓거려라, 나는 바쁘다”며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게 바로 오늘의 나라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제발 스마트폰 좀 그만 쳐다보라”고 밥상머리에서 야단치는 아내의 수없는 잔소리에도 나는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들은 젊음을 낭비하고 있어요. 우리는 단 한번밖에 젊지 않은데도요.”  소위 (신)<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미국 청소년들의 외침이다.  신기술로 무장된 삶이 편리함을 넘어 건강한 삶과 인간 내면의 자의식까지 망가뜨린다며, 그들은 신기술과 인간성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주창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버리고 플립폰만을 사용하고, 클럽 소식지도 인쇄물로 제작된 뉴스레터, “The Luddite Dispatch”를 이용한다.

러다이트 클럽은 뉴욕/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고교생들과 대학생들에 의해서 3년전 결성되었다. “신기술, 소시얼 미디어로 더욱 행복한 인간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나요?”   “동아리 모임 Luddite Club에 조인하세요”.  그들은 ”휴대폰조차 전혀 필요없는 세상, 부모와 연락을 안해도 살아가는, 진짜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러다이트 운동은 단순한 기술이나 기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정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기계에 끌려다니는 가짜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거다.

이들을 ‘러다이트‘들이라고 하는데, 이 운동의 원조는 18세기초 수공업시대에서 기계공업시대로 접어들면서 영국에서 일어났다.  수공업자들이 노동자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기계로 인해 고통을 받을 바에야 차라리 기계를 부숴버리는 것이 낫다”며 밤이 되면 몰래 망치로 기계를 고장내거나 공장을 불태우기도 했다.  최초의 노동운동이었던 셈인데, 이 운동의 지향점은 단순한 기계 반대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보장, 즉 삶을 위협한 모든 것은 위험한 것,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인간성의 파괴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손글씨로 정성을 담아 우표딱지를 반듯하게 붙인 옛 친구들의 정겨운 편지들이 그립다.  수만리 태평양을 뚫고 전화기 속에서 들려왔던— 고향 어머님의 애끓는 사랑의 목소리, 예쁜 꽃그림과 함께 사람 냄새나는 연하장…가끔씩 먹고싶은 묵은지처럼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요즈음은 어떤가? 스마트폰으로 남의 그림  달랑 카피해 보내주는 축하 카드나 안부, 연하장들을 보라. 어떤 감흥이 있는가?  때로는 예전에 받았던 똑같은 카드가 돌고 돌다가 나에게 다시 전달되곤 한다. 그런 카드들을 받을 때면 정말 기분까지 나빠지기도 한다.    

스마트폰 중독증을 치료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무심코 또 스마트폰을 쥐고 말았다.  ChatGTP 왈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SNS 디톡스를 시도해 보세요.  수신 알림을 최소화 하세요.  자기 전 1~2시간 동안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블루라이트 필터를 사용하세요.  오프라인 활동, 운동, 독서, 명상, 예술활동…등을 늘려 삶의 균형을 맞추세요. 가족이나 친구와의 직접적인 대화를 늘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보다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 하며 살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마력의 충고인가? 우리가 과연 해리포터 얘기 속에 나오는 마법의 감옥 “애즈카반”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한참이나 너털웃음을 짓지않을 수 없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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