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녀1남 중 막내인 아들이 장가를 든다.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나이는 36세, 한국말이 서툰 완전히 미국놈이다. 그런 그가 한국인 배필을 만났다. 그의 할아버지께서 생존시 “너는 우리 가문의 피를 이어가야 하니 결혼만은 꼭 한국인과 했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부탁이 있었고, 아들이 ”꼭 그렇게 하겠다“는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사실 아들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한인 젊은이들이 많이 거주는 덴버까지 아내감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그곳에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100%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행운이었다.
물론 우리 부부는 꼭 한국인 며느리만을 고집하거나 기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들이 데려온 며느리감을 막상 만나고 보니 너무도 좋았다. 특히 나의 경우가 그랬다. 40년 미국에서 살았지만 영어가 서툰 나는 며느리와 한국말로 어떤 얘기든 백퍼센트 시원하게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도 신이 났던 것이다. 며느리감은 더구나 네이티브 영어도 구사한다. 아들은 물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내가 미국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언어였다. 밖에 나가서 사업상 미국인들과 대화는 대충 넘길 수 있었지만, 가정에서 아이들과 대화가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내는 나보다 나았다. 아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농담이나 진지한 대화를 아내는 한국말을 섞어 가면서 잘도 해냈다.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아내는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족간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에 나는 끼어들기가 쉽지 않다. 영어로 나누는 대화의 상당 부분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며느리를 만나게 된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 사시는 예비 사돈들은 한국말이 서툰 사윗감를 처음 만나보시고 꽤 난감해 하신 것으로 안다. 결국 “한국말을 배우겠다”는 약속을 결혼 허락 조건의 하나로 내세우셨다고 한다. 아들은 약속을 했고, 현재 나름대로 열심히 한국말 공부를 하고있다.
언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뜻은 물론 감정의 뉴앙스까지도 한꺼번에 전달되어질 때 진짜배기 소통이 이루어지는 거다. 한국인끼리도 언어 소통 문제가 작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의 아내는 경상도고 나는 전라도 출신이다. 상호간 감정의 나눔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전라도 사람인나는 전라도 사람들과 사투리를 섞어 가면서 얘기를 나눌 때야 비로소 대화가 맛깔스럽다. 된장국 맛 같은 대화의 맛을 즐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아이들과 함께 그런 된장국 맛 같은 감정을 나눌 수 없었던 것이 사실 가장 가슴이 아팠었다. 참다운 언어구사는 정감까지도 담아내는 그릇이어야 하는데, 나의 영어 그릇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일반적인 나의 감정도 쉽게 담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이고 내새끼야!”같은 뼈속에서부터 솟구치는 사랑의 정감은 더더욱 담아내지 못한다.
수년전 <말모이>라는 한국 영화가 개봉되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적이 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조선어 사전을 편찬했던 과정을 그린 영화다. 조선 사람들은 뜻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 더 큰 한걸음으로 한국어 사전을 편찬했다. 독립을 준비한 것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대사가 바로 이 영화속에서 나왔다.
뷰티업계가 동포들간 협동의 힘을 잃어가고 있다. 정감을 담아내는 언어의 그릇들이 점점 구멍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창업세대가 이만만한 판세를 만들어낸 것도 결국은 한국말이라는 언어의 그릇때문이 아니었을까. 차세대로 이어지면서 과연 오늘의 판세를 지켜갈 수 있을까?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를 그래도 괜찮게 구사하는 1.5세대들의 역할이 이제 매우 중요해졌다.